致 🌏한자(사자성어) 💡인명 분야 21개
-
김치인
(金致仁)
:
조선 후기의 문신(1716~1790). 자는 공서(公恕). 호는 고정(古亭). 영조 24년(1748)에 문과에 장원하고, 좌승지ㆍ부제학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1785년에 ≪대전통편≫의 편찬을 총재하였고, 정조의 명으로 당쟁의 조정에 힘썼으며 영중추부사를 지냈다.
🌏 金: 성 김 致: 이를 치 仁: 어질 인 -
권치문
(權致文)
:
조선 시대의 가톨릭교인(1833~1892). 만주를 왕래하며 외국 선교사들과 연락하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 건물인 서울 약현 천주교회를 건립하는 데 공헌하였다.
🌏 權: 권세 권 致: 이를 치 文: 글월 문 꾸밀 문 -
유대치
(劉大致/劉大癡)
:
구한말의 개화사상가(1831~?). 본명은 홍기(鴻基). 자는 성규(聖逵). 대치는 호. 청년들에게 개혁 사상을 고취하고, 국제 정세를 살펴 기우는 나라를 바로잡으려 힘썼다. 개화당을 뒤에서 조종하여 백의정승이란 말을 들었다.
🌏 劉: 죽일 류 죽일 유 大: 큰 대 致: 이를 치 劉: 죽일 류 죽일 유 大: 큰 대 癡: 어리석을 치 -
윤치호
(尹致昊)
:
구한말의 정치가(1865~1945). 호는 좌옹(佐翁). 윤웅렬의 아들. 신사 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와서 개화 사상에 눈을 뜬 후 미국에 유학하였다. 서재필 등과 독립 협회를 조직하였으며, 국권 강탈 후 총독 암살 계획에 가담한 혐의로 6년 형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귀족원 의원을 지냈으며 광복 후 일본에 협력한 것을 자탄하다가 자결하였다.
🌏 尹: 다스릴 윤 致: 이를 치 昊: 하늘 호 -
김선치
(金先致)
:
고려 말기의 무신(1318~1398).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쳐 일등 공신이 되고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냈다. 우왕 초에 투항해 온 일본 해적 후지 쓰네미쓰(藤經光)의 무리를 유인하여 죽이려다 실패하여 수졸(戍卒)로 충군(充軍)되었으나, 후에 낙성군(洛城軍)에 봉하여졌다.
🌏 金: 성 김 先: 먼저 선 致: 이를 치 -
이날치
(李捺致)
:
조선 말기의 광대ㆍ명창(1820~1892). 자는 경숙(敬淑). 박유전(朴裕全)의 문하에서 연구하고 그의 법제를 계승하여 박유전, 정창업(丁昌業) 이래 서편제의 제일 명창이 되었다. 특히 <춘향가>와 <심청가>를 잘 불렀다.
🌏 李: 오얏 이 捺: 손으로 누를 날 致: 이를 치 -
남치근
(南致勤)
:
조선 시대의 무신(?~1570). 자는 근지(勤之). 제주, 남평 등지에서 왜구를 무찔렀으며, 황해도에서 세력을 떨치던 임꺽정을 잡아 죽였다.
🌏 南: 남녘 남 致: 이를 치 勤: 부지런할 근 -
마치원
(馬致遠)
:
중국 원나라의 극작가(1250?~1324?). 호는 동리(東籬). 원곡 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작품에 <한궁추(漢宮秋)>, <임풍자(任風子)> 따위가 있다.
🌏 馬: 말 마 致: 이를 치 遠: 멀 원 -
유치명
(柳致明)
:
조선 철종 때의 문신ㆍ학자(1777~1861). 자는 성백(誠伯). 호는 정재(定齋). 여러 차례 대사간을 지냈으며, 장헌 세자 추존 문제로 유배 생활도 하였으나 만년에는 후진 양성에 전력하였다. 저서에 ≪독서쇄어(讀書瑣語)≫, ≪예의총화(禮疑叢話)≫, ≪가례집해(家禮輯解)≫ 따위가 있다.
🌏 柳: 버들 유 致: 이를 치 明: 밝을 명 -
노리사치계
(奴唎斯致契)
:
백제의 귀족(?~?). 벼슬은 달솔(達率)에 이르렀으며, 성왕 30년(552)에 일본에 불상, 경론(經論), 번개(幡蓋) 따위를 전하였다.
🌏 奴: 종 노 唎: 가는 소리 리 斯: 이 사 致: 이를 치 契: 맺을 계 -
한치응
(韓致應)
:
조선 후기의 문신(1760~1824). 자는 혜보(徯甫). 호는 병산(甹山). 순조 때 채제공의 신원(伸冤)을 청하는 상소 사건에 연루되어 쫓겨났다가 뒤에 다시 등용되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이유수(李儒修), 정약전 등과 교유하며 죽란 시사(竹欄詩社)라는 모임을 조직하였다. 저서에 ≪병산집≫이 있다.
🌏 韓: 나라 한 致: 이를 치 應: 응할 응 -
김치양
(金致陽)
:
고려 시대의 권신(權臣)(?~1009). 목종 때에 천추 태후의 총애를 얻어, 우복야 겸 삼사사를 지내면서 전횡을 일삼았다. 목종을 살해하려다가, 1009년에 강조(康兆)의 정변(政變)으로 현종이 즉위하자 처형되었다.
🌏 金: 성 김 致: 이를 치 陽: 볕 양 -
최치혁
(崔致爀)
:
조선 시대의 천주교 신자(1809~1878). 일명 선일(善一). 세례명은 요한. 중국에서 ≪한불자전(韓佛字典)≫, ≪한어문전(韓語文典)≫의 편찬에 종사하였다.
🌏 崔: 높을 최 致: 이를 치 爀: 불빛 혁 -
유치환
(柳致環)
:
시인ㆍ교육가(1908~1967). 호는 청마(靑馬). ≪문예 월간≫에 작품 <정적(靜寂)>을 발표하고 등단하였으며, 생명파 시인으로 불린다. 시집에 ≪청마 시초≫, ≪생명의 서≫, ≪울릉도≫ 따위가 있다.
🌏 柳: 버들 유 致: 이를 치 環: 고리 환 -
한치형
(韓致亨)
:
조선 연산군 때의 문신(1434~1502). 자는 통지(通之). 무오사화 때 좌의정이 되어 김일손 등을 처형하게 하고, 연산군의 폭정을 충간하다가 미움을 사서 부관참시되었다.
🌏 韓: 나라 한 致: 이를 치 亨: 형통할 형 -
구치관
(具致寬)
:
조선 전기의 문신(1406~1470). 자는 이율(而栗). 계유정난 때 공을 세워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산업을 장려하고 청탁을 배격하여 청백리의 본보기가 되었다.
🌏 具: 갖출 구 致: 이를 치 寬: 너그러울 관 -
유치봉
(兪致鳳)
:
조선 말기의 서화가(1826~?). 호는 하산(霞山). 전서ㆍ예서에 능함은 물론 산수화에도 뛰어났으며, 벼슬은 참봉을 지냈다.
🌏 兪: 그러할 유 致: 이를 치 鳳: 봉새 봉 -
최치원
(崔致遠)
:
통일 신라 말기의 학자ㆍ문장가(857~?). 자는 고운(孤雲)ㆍ해운(海雲). 12세에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격문(檄文)을 써서 이름을 높였다. 저서에 ≪계원필경≫, ≪사륙집(四六集)≫ 따위가 있다.
🌏 崔: 높을 최 致: 이를 치 遠: 멀 원 -
한치윤
(韓致奫)
:
조선 후기의 고증학자(1765~1814). 자는 대연(大淵). 호는 옥유당(玉蕤堂).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학문에만 전심하였으며, 실사구시와 무징불신(無徵不信)의 고증학적 학술 방법을 소개하였다. ≪해동역사≫ 70권을 편찬하였다.
🌏 韓: 나라 한 致: 이를 치 奫: 물 깊고 넓을 윤 -
유치진
(柳致眞)
:
극작가ㆍ연출가(1905~1974). 호는 동랑(東朗).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극예술 연구회를 만들었으며, 국립 극장장ㆍ드라마 센터 소장 등을 지냈다. 작품에 <별>, <자명고>, <원술랑>, <사육신> 따위가 있다.
🌏 柳: 버들 유 致: 이를 치 眞: 참 진 -
박치화
(朴致和)
:
조선 숙종ㆍ영조 때의 학자(1680~1767). 초명(初名)은 치원(致遠). 자는 사이(士邇). 호는 읍건재(泣愆齋)ㆍ손재(巽齋). 벼슬을 외면하고 저작에만 힘썼으며, 저서에 ≪설계수록(雪溪隨錄)≫이 있다.
🌏 朴: 순박할 박 致: 이를 치 和: 화목할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