齋 🌏한자(사자성어) 💡인명 분야 32개
-
점필재
(佔畢齋)
:
‘김종직’의 호. (김종직: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ㆍ문신(1431~1492). 자는 계온(季昷). 호는 점필재(佔畢齋). 세조 5년(1459)에 문과에 급제하고, 형조 판서ㆍ지중추부사 따위를 지냈다. 문장과 경술이 뛰어나 영남학파의 종조(宗祖)가 되었다. 그의 <조의제문>은 뒷날 무오사화의 원인이 되었다. 저서에 ≪점필재집≫, ≪청구풍아≫ 따위가 있다.)
🌏 佔: 엿볼 점 畢: 마칠 필 齋: 재계할 재 -
노가재
(老歌齋)
:
‘김수장’의 호. (김수장: 조선 시대의 문인ㆍ가객(歌客)(1690~?). 자는 자평(子平). 호는 노가재(老歌齋)ㆍ십주(十洲). 김천택과 함께 경정산 가단을 결성하여 시조 보급에 힘썼고 ≪해동가요≫를 편찬하였다.)
🌏 老: 늙을 노 歌: 노래 가 齋: 재계할 재 -
사재
(思齋)
:
‘김정국’의 호. (김정국: 조선 중기의 학자ㆍ문신(1485~1541). 자는 국필(國弼). 호는 사재(思齋). 중종 4년(1509)에 문과에 장원하고, 사간ㆍ승지를 지낸 뒤 기묘사화 때에 삭탈관직이 되었으나, 그 뒤 병조 참의ㆍ공조 참의ㆍ형조 참판을 지냈다. 김굉필의 문인으로 학문과 시문이 뛰어났다. 저서에 ≪성리대전절요(性理大全節要)≫, ≪촌가구급방(村家救急方)≫ 따위가 있다.)
🌏 思: 생각 사 齋: 재계할 재 -
환재
(桓齋/瓛齋)
:
‘박규수’의 호. (박규수: 조선 고종 때의 문신(1807~1877). 자는 환경(桓卿/瓛卿)ㆍ정경(鼎卿). 호는 환재(瓛齋ㆍ桓齋)ㆍ환재거사(瓛齋居士). 고종 3년(1866)에 평안도 관찰사로 있을 때 대동강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던 미국 상선 셔먼호를 불살랐다. 후에 판중추부사가 되어 일본과의 친교를 주장하여 강화도 조약을 맺게 하였다. 저서에 ≪환재집≫이 있다.)
🌏 桓: 굳셀 환 齋: 재계할 재 瓛: 옥홀 환 齋: 재계할 재 -
호경재
(胡敬齋)
:
‘호거인’의 성(姓)과 호를 함께 이르는 말. (호거인: 중국 명나라 초기의 주자학자(1434~1484). 자는 숙심(叔心). 호는 경재(敬齋). 오강재(吳康齋)의 문하에 들어가 정주학을 배우고, 진헌장(陳獻章) 등의 심학(心學)을 배격하였다. 저서에 ≪거업록(居業錄)≫, ≪호경재집(胡敬齋集)≫ 따위가 있다.)
🌏 胡: 오랑캐 호 敬: 공경할 경 齋: 재계할 재 -
공재
(恭齋)
:
‘윤두서’의 호. (윤두서: 조선 후기의 서화가(1668~1715). 자는 효언(孝彦). 호는 공재(恭齋). 겸재(謙齋)ㆍ현재(玄齋)와 함께 조선의 삼재(三齋)라고 불릴 만큼 서화에 능하였다. 작품에 <산수도(山水圖)>,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 <노승도(老僧圖)> 따위가 있다.)
🌏 恭: 공손할 공 齋: 재계할 재 -
산강재
(山康齋)
:
‘변영만’의 호. (변영만: 법률가ㆍ한문학자(1889~1954). 자는 곡명(穀明). 호는 산강재(山康齋). 대한 제국 말기에 법관 양성소에 들어가 법률을 공부한 후 판사가 되었으며, 그 후 중국에 망명하였다가 귀국하여 한문학ㆍ영문학을 연구하였다. 종래 고문의 법도에서 탈피하여 한국적 정서를 담은 문체를 개척하였다. 문집에 ≪산강재문초(山康齋文鈔)≫가 있다.)
🌏 山: 뫼 산 康: 편안할 강 齋: 재계할 재 -
담재
(澹齋)
:
‘김인후’의 호. (김인후: 조선 중기의 문신ㆍ유학자(1510~1560).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ㆍ담재(湛齋). 중종 35년(1540)에 문과에 급제하고, 설서ㆍ부수찬을 거쳐 옥과 현령을 지냈으나,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낙향하여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저서에 ≪하서집≫,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 따위가 있다.)
🌏 澹: 물 맑을 담 齋: 재계할 재 -
노가재
(老稼齋)
:
‘김창업’의 호. (김창업: 조선 중기의 문인(1658~1721). 자는 대유(大有). 호는 노가재(老稼齋)ㆍ가재(稼齋). 형 창집(昌集)이 사은사로 청나라에 갈 때에, 그를 따라 연경(燕京)에 다녀와 기행문 <노가재연행일기>를 썼다. 저서에 ≪노가재집≫이 있다.)
🌏 老: 늙을 노 稼: 심을 가 齋: 재계할 재 -
홍재
(弘齋)
: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의 호.
🌏 弘: 넓을 홍 齋: 재계할 재 -
성재
(省齋)
:
‘이시영’의 호. (이시영: 정치가ㆍ독립운동가(1869~1953). 자는 성옹(聖翁). 호는 성재(省齋)ㆍ시림산인(始林山人). 1910년에 국권이 강탈되자 남만주로 이주하여 신흥 무관 학교를 창설하고 독립군의 양성에 힘썼다. 3ㆍ1 운동 후 상하이 임시 정부 법무 총장, 재무 총장을 지냈다. 광복 후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통치에 반대하여 사직하였다.)
🌏 省: 살필 성 齋: 재계할 재 - 사이토 마코토 (Saitô Makoto[齋藤實]) : 일본의 정치가ㆍ해군 대장(1858~1936). 1919년에 조선 총독에 취임하여 문화 정치를 시행하고, 1932년 5ㆍ15 사건 후에 내각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1936년 2ㆍ26 사건으로 암살되었다.
-
보진재
(葆眞齋)
:
‘노사신’의 호. (노사신: 조선 시대의 문신ㆍ학자(1427~1498). 자는 자반(子胖). 호는 보진재(葆眞齋)ㆍ천은당(天隱堂). 지평, 직제학 따위를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세조 때 ≪경국대전≫의 호전(戶典)을 편찬하고, 성종 때 ≪삼국사절요≫,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였다.)
🌏 葆: 풀 더부룩할 보 眞: 참 진 齋: 재계할 재 -
현재
(玄齋)
:
‘심사정’의 호. (심사정: 조선 후기의 화가(1707~1769). 자는 이숙(頥叔). 호는 현재(玄齋)ㆍ묵선(墨禪). 영모(翎毛)와 산수에 능하였으며, 김홍도와 더불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꼽힌다. 작품에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 <모란도(牧丹圖)>, <맹호도(猛虎圖)> 따위가 있다.)
🌏 玄: 검을 현 齋: 재계할 재 -
회재
(晦齋)
:
‘이언적’의 호. (이언적: 조선 중종 때의 성리학자(1491~1553).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ㆍ자계옹(紫溪翁).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쫓겨나 경주 자옥산(紫玉山)에 들어가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후에 다시 등용되어 좌찬성 겸 원상(院相)까지 지냈으나 윤원형 일당의 모함으로 강계(江界)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저서에 ≪회재집≫이 있다.)
🌏 晦: 그믐 회 齋: 재계할 재 -
혜재
(惠齋)
:
‘어윤적’의 호. (어윤적: 조선 고종 때의 학자(1868~1935). 자는 치덕(穉德). 호는 혜재(惠齋). 중추원 부참의, 조선사 편찬 위원, 경성 제국 대학 법문학부 강사 따위를 지냈으며, 한글의 기원을 태극도에 결부하여 설명하였다.)
🌏 惠: 은혜 혜 齋: 재계할 재 -
가재
(稼齋)
:
‘김창업’의 호. (김창업: 조선 중기의 문인(1658~1721). 자는 대유(大有). 호는 노가재(老稼齋)ㆍ가재(稼齋). 형 창집(昌集)이 사은사로 청나라에 갈 때에, 그를 따라 연경(燕京)에 다녀와 기행문 <노가재연행일기>를 썼다. 저서에 ≪노가재집≫이 있다.)
🌏 稼: 심을 가 齋: 재계할 재 -
용재
(容齋)
:
‘이행’의 호. (이행: 조선 중종 때의 문신(1478~1534).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ㆍ창택어수(滄澤漁水)ㆍ청학도인(靑鶴道人). 갑자사화 때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유배되었으나, 기묘사화 후 입조(入朝)하여 대제학, 이조 판서, 우의정 등을 지냈다. 저서에 ≪용재집≫이 있다.)
🌏 容: 얼굴 용 齋: 재계할 재 -
소재
(蘇齋)
:
‘노수신’의 호. (노수신: 조선 시대의 문신ㆍ학자(1515~1590).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ㆍ여봉노인(茹峯老人)ㆍ암실(暗室)ㆍ이재(伊齋). 을사사화로 유배되었다가 복귀하여 영의정에 올랐으나 기축옥사로 파직되었다. 저서에 ≪소재집≫이 있다.)
🌏 蘇: 차조기 소 齋: 재계할 재 -
겸재
(謙齋)
:
‘임제’의 호. (임제: 조선 선조 때의 시인(1549~1587).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ㆍ겸재(謙齋)ㆍ풍강(楓江)ㆍ소치(嘯癡)ㆍ벽산(碧山). 당대의 명문장가로 호방하고 쾌활한 시풍을 보였으며, 속리산에서 학문에 몰두하였다. 문집에 ≪백호집≫이 있고, 작품에 <수성지> 따위가 있다.)
🌏 謙: 겸손할 겸 齋: 재계할 재 -
모재
(慕齋)
:
‘김안국’의 호. (김안국: 조선 전기의 문신ㆍ학자(1478~1543). 자는 국경(國卿). 호는 모재(慕齋). 예조 판서, 대제학 등을 지냈다. 박학하고 문장에 능한 성리학자로서 저서에 ≪모재집≫ㆍ≪모재가훈≫, 편서에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ㆍ≪동몽선습≫ 따위가 있다.)
🌏 慕: 사모할 모 齋: 재계할 재 -
기재
(企齋)
:
‘신광한’의 호. (신광한: 조선 중종 때의 문신(1484~1555). 자는 한지(漢之)ㆍ시회(時晦). 호는 기재(企齋)ㆍ낙봉(駱峯)ㆍ석선재(石仙齋)ㆍ청성동주(靑城洞主). 기묘사화 때 조광조 일파로 몰려 여주에 퇴거하였다가 다시 돌아와 대제학, 좌찬성, 우찬성을 지냈다. 저서에 ≪기재집≫, ≪기재기이≫ 따위가 있다.)
🌏 企: 꾀할 기 齋: 재계할 재 -
경재
(敬齋)
:
‘이기’의 호. (이기: 조선 명종 때의 문신(1476~1552). 자는 문중(文仲). 호는 경재(敬齋). 명종 즉위년(1545)에 우의정에 올라 윤원형 등 소윤 일파와 손을 잡고 을사사화를 일으켰다. 후에 영의정에 이르렀으나, 선조 초에 훈작(勳爵)이 추삭되고 묘비도 제거되었다.)
🌏 敬: 공경할 경 齋: 재계할 재 -
단재
(丹齋)
:
‘신채호’의 호. (신채호: 사학자ㆍ독립운동가ㆍ언론인(1880~1936). 호는 단재(丹齋)ㆍ단생(丹生)ㆍ일편단생(一片丹生). 성균관 박사를 거쳐,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등에 강직한 논설을 실어 독립 정신을 북돋우고, 국권 강탈 후에는 중국에 망명하여 독립운동과 국사 연구에 힘쓰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저서에 ≪조선 상고사≫, ≪조선사 연구초(朝鮮史硏究草)≫ 따위가 있다.)
🌏 丹: 붉을 단 齋: 재계할 재 -
학역재
(學易齋)
:
‘정인지’의 호. (정인지: 조선 전기의 문신ㆍ학자(1396~1478). 자는 백저(伯雎). 호는 학역재(學易齋). 시호는 문성(文成). 대제학, 영의정을 지냈다. 대통력(大統曆)과 역법(曆法)을 개정하였으며 많은 책을 편찬하고, ≪고려사≫를 찬수하였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안지, 최항(崔恒) 등과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저서에 ≪자치통감훈의≫, ≪치평요람≫ 따위가 있다.)
🌏 學: 배울 학 易: 바꿀 역 齋: 재계할 재 -
우재
(愚齋)
:
‘이이’의 호. (이이: 조선 중기의 문신ㆍ학자(1536~1584).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ㆍ석담(石潭)ㆍ우재(愚齋). 호조, 이조, 병조 판서, 우찬성을 지냈다. 서경덕의 학설을 이어받아 주기론을 발전시켜 이황의 주리적(主理的) 이기설과 대립하였다. 저서에 ≪율곡전서≫, ≪성학집요≫, ≪경연일기≫가 있다.)
🌏 愚: 어리석을 우 齋: 재계할 재 -
신독재
(愼獨齋)
:
‘김집’의 호. (김집: 조선 중기의 문신ㆍ학자(1574~1656).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김장생의 아들이며 지평ㆍ집의를 거쳐, 효종 때에 이조 판서가 되어 북벌을 계획하였으나, 김자점이 이 사실을 청나라에 밀고하자 관직을 사임하고 예학(禮學)을 연구하였다. 저서에 ≪신독재집≫이 있다.)
🌏 愼: 삼갈 신 獨: 홀로 독 齋: 재계할 재 -
근재
(謹齋)
:
‘안축’의 호. (안축: 고려 말기의 학자(1287~1348).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젊어서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하고 충렬, 충선, 충숙 세 왕의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작품에 경기체가인 <관동별곡>과 <죽계별곡>, 저서에 문집 ≪근재집≫이 있다.)
🌏 謹: 삼갈 근 齋: 재계할 재 -
명재
(明齋)
:
‘윤증’의 호. (윤증: 조선 숙종 때의 학자(1629~1714).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ㆍ유봉(酉峯). 예론(禮論)에 정통한 학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수차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남인에 대한 입장이 달라 서인이 둘로 나뉜 후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었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따위가 있다.)
🌏 明: 밝을 명 齋: 재계할 재 -
보한재
(保閑齋)
:
‘신숙주’의 호. (신숙주: 조선 초기의 문신(1417~1475). 자는 범옹(泛翁). 호는 보한재(保閑齋)ㆍ희현당(希賢堂).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동국통감≫ㆍ≪오례의≫를 편찬하였다.)
🌏 保: 보전할 보 閑: 한가할 한 齋: 재계할 재 -
용재
(慵齋)
:
‘성현’의 호. (성현: 조선 성종 때의 문신ㆍ학자(1439~1504). 자는 경숙(磬叔). 호는 부휴자(浮休子)ㆍ용재(慵齋)ㆍ허백당(虛白堂)ㆍ국오(菊塢). 대제학(大提學) 등을 지냈고, ≪악학궤범≫을 편찬하여 음악을 집대성하였다. 저서에 ≪용재총화≫, ≪허백당집≫ 따위가 있다.)
🌏 慵: 게으를 용 齋: 재계할 재 -
겸재
(謙齋)
:
‘정선’의 호. (정선: 조선 후기의 화가(1676~1759).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ㆍ겸초(兼艸)ㆍ난곡(蘭谷). 국내의 명승고적을 찾아다니면서 진경적(眞景的)인 사생화를 많이 그려 한국적 산수화풍을 세웠다. 작품에 <여산초당도(廬山草堂圖)>, <입암도(立巖圖)>, <금강산만폭동도(金剛山萬瀑洞圖)> 따위가 있으며, 저서에 ≪도설경해(圖說經解)≫가 있다.)
🌏 謙: 겸손할 겸 齋: 재계할 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