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 🌏한자(사자성어) 💡인명 분야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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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홍
(鄭在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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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1907).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에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자결하였다.
🌏 鄭: 나라 이름 정 在: 있을 재 洪: 큰 물 홍 -
이재
(李在)
:
조선 후기의 문인(?~?). 벼슬은 영주 군수를 거쳐 한성부 서윤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으며 ≪화원악보≫, ≪해동가요≫에 시조 2수가 전한다.
🌏 李: 오얏 이 在: 있을 재 -
이재학
(李在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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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1904~1973). 경성 제국 대학 법문학부를 나와, 광복 후 강원도 지사, 춘천 농과대 학장을 지냈으며 제헌 국회 의원과 2ㆍ3ㆍ4ㆍ5대 국회 의원, 국회 부의장을 거쳐 자유당 대표 최고 위원을 지냈다.
🌏 李: 오얏 이 在: 있을 재 鶴: 학 학 -
장재봉
(張在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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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예술인(1896~1966). 어려서부터 오광대 탈춤을 배웠으며, 통영 오광대를 부활시켜 이를 보존하는 데 힘썼다. 무형 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문둥탈ㆍ둘째양반ㆍ말뚝이ㆍ비비양반 따위에 특기가 있었다.
🌏 張: 베풀 장 在: 있을 재 奉: 받들 봉 -
손재형
(孫在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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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1903~1981). 자는 명보(明甫). 호는 소전(素荃). 8ㆍ15 광복 후 국전(國展) 심사 위원과 운영 위원으로 활약하였고, 소전체를 개발하여 서예 발전에 공헌하였다. 저서에 ≪팔마유풍(八馬遺風)≫이 있다.
🌏 孫: 손자 손 在: 있을 재 馨: 향내 멀리 날 형 -
안재홍
(安在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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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ㆍ정치가(1891~1965). 호는 민세(民世). 3ㆍ1 운동 이후 대한 청년 외교단을 조직하여 활약하고, 1923년 ≪시대일보≫를 창간하였다. 광복 후 국민당을 조직하였고, ≪한성일보≫ 사장ㆍ미 군정청 민정 장관ㆍ제2대 국회 의원 등을 지냈다.
🌏 安: 편안할 안 在: 있을 재 鴻: 큰 기러기 홍 -
정재관
(鄭在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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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1880~1930). 미국에 건너가 ≪공립신보(共立新報)≫의 주필이 되었으며, 재미(在美) 한인 국민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 鄭: 나라 이름 정 在: 있을 재 寬: 너그러울 관 -
함재운
(咸在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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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1854~1916). 일명 재소(在韶). 자는 치관(致寬). 호는 겸와(謙窩). 거문고의 명인으로 악리(樂理)와 궁중 연례에 밝았으며, 정재(呈才) 교수에도 일인자였다. 옛 한문보(漢文譜)를 현재 사용되는 음조로 옮겼다.
🌏 咸: 다 함 在: 있을 재 韻: 운 운 -
유재건
(劉在建)
:
조선 후기의 학자(1793~1880). 자는 덕초(德初). 호는 겸산(兼山). 시와 서예에 능하였다. 철종 8년(1857)에 최경흠과 함께 ≪풍요삼선≫을 편찬하여 위항시를 정리하였다. 위항인의 전기집인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과 위항 시인의 명시를 가려 뽑은 ≪고금영물근체(古今詠物近體)≫를 펴내어 위항 문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 劉: 죽일 유 在: 있을 재 建: 세울 건 -
김재로
(金在魯)
:
조선 후기의 문신(1682~1759). 자는 중례(仲禮). 호는 청사(淸沙)ㆍ허주자(虛舟子). 숙종 36년(1710)에 문과에 급제하고 지평, 수찬을 거쳐 좌의정, 영의정을 지냈다. 노론(老論)의 선봉으로 활약하였으며, 청빈한 재상으로 이름이 높았다.
🌏 金: 성 김 在: 있을 재 魯: 노둔할 로 -
남재
(南在)
:
조선의 개국 공신(1351~1419). 초명은 겸(謙). 자는 경지(敬之). 호는 귀정(龜亭). 태조 5년(1396)에 도병마사로 쓰시마섬[對馬島]을 정벌하였으며 우의정, 영의정 따위를 지냈다. 이색의 문인으로 문장에 뛰어나고 경제에 밝았으며, 산수(算數)에도 능하였다. 저서에 ≪귀정유고(龜亭遺稿)≫가 있다.
🌏 南: 남녘 남 在: 있을 재 -
강재구
(姜在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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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1937~1965). 1965년에 월남 파병 부대의 중대장으로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시키던 중, 부하 사병의 실수로 중대 한가운데로 떨어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어 부하의 생명을 구하고 죽었다.
🌏 姜: 성 강 在: 있을 재 求: 구할 구 -
김재육
(金在堉)
:
조선 후기의 학자(1808~1893). 자는 우홍(宇洪). 호는 운고(雲皐). 평생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80세에 이르러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저서에 ≪운고집≫이 있다.
🌏 金: 성 김 在: 있을 재 堉: 기름진 땅 육 -
강재흥
(姜在興)
:
조선 말기의 악사(1852~?). 해금(奚琴)의 연주에 능하였으며 특히 <여민락>에 뛰어났다.
🌏 姜: 성 강 在: 있을 재 興: 일어날 흥 -
신재효
(申在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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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고종 때의 판소리 작가(1812~1884). 자는 백원(百源). 호는 동리(桐里). 종래 계통 없이 불러오던 광대 소리를 통일하여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끼 타령>, <적벽가>, <가루지기타령>의 여섯 마당으로 판소리 사설을 정리하였고, 판소리 이론의 정립에도 힘썼다.
🌏 申: 납 신 在: 있을 재 孝: 효도 효 -
이재관
(李在寬)
:
조선 시대의 화가(1783~1837). 자는 원강(元剛). 호는 소당(小塘). 벼슬은 등산첨사(登山僉使)에 이르렀다. 구름, 초목, 새 따위를 잘 그렸으며 특히 초상화에 뛰어났다. 작품에 <송하인물도(松下人物圖)>, <약산초상(若山肖像)>, <월하신선도(月下神仙圖)> 따위가 있다.
🌏 李: 오얏 이 在: 있을 재 寬: 너그러울 관 -
이재명
(李在明)
:
독립운동가(1890~1910). 1909년 명동 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이세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던 이완용을 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순국하였다.
🌏 李: 오얏 이 在: 있을 재 明: 밝을 명 -
유재소
(劉在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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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의 화가(1829~1911). 자는 구여(九如). 호는 학석(鶴石)ㆍ형당(蘅堂)ㆍ소천(小泉). 묵화를 잘 그렸으며, 대표작으로 <청송도(靑松圖)>, <추수계정도(秋樹溪亭圖)> 따위가 있다.
🌏 劉: 죽일 유 在: 있을 재 韶: 풍류 이름 소 -
이상재
(李商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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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ㆍ종교가(1850~1927). 자는 계호(季皓). 호는 월남(月南). 1888년에 주미 공사 서기로 부임하였으며 귀국 후에 의정부 참찬을 지냈고, 서재필과 독립 협회를 조직하여 민중 계몽에 힘썼다. 3ㆍ1 운동 후 조선일보 사장을 거쳐 1906년에 기독교 청년회장이 되었다. 1927년에 신간회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다.
🌏 李: 오얏 이 商: 장사 상 在: 있을 재 -
어재연
(魚在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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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의 무장(1823~1871). 자는 성우(性于). 병인양요 때 우선봉(右先鋒)으로 광성진을 수비하고, 신미양요 때 순무(巡撫) 중군(中軍)으로 다시 광성진을 수비하던 중 전사하였다.
🌏 魚: 물고기 어 在: 있을 재 淵: 못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