瑞 🌏한자(사자성어) 💡인명 분야 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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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서
(崔載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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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평론가ㆍ영문학자(1908~1964). 호는 석경우(石耕牛). 필명은 학수리(鶴首里)ㆍ상수시(尙壽施). 주지주의적인 비평을 시도하였고, 셰익스피어 연구에 공이 크다. 저서에 ≪문학 원론≫, ≪셰익스피어 예술론≫ 따위가 있고 ≪아메리카의 비극≫, ≪포 단편집≫ 따위를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 崔: 높을 최 載: 실을 재 瑞: 상서 서 -
이서구
(李瑞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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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ㆍ언론인(1899~1982). 1920년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하고 이후 ≪조선일보≫와 ≪매일신보≫를 거쳐서 연극 활동에 가담하였다. 광복 후에 방송극을 집필, 극작가 협회 회장과 방송인 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작품에 <동백꽃>, <어머니의 힘>, <장 희빈>, <강화 도령> 따위가 있다.
🌏 李: 오얏 이 瑞: 상서 서 求: 구할 구 -
장서도
(張瑞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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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나라 말기의 서화가ㆍ정치가(1570~1644). 자는 장공(長公). 호는 이수(二水). 서화(書畫)에 두루 뛰어났으나 개성이 강한 작풍을 보여, 화단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였다.
🌏 張: 베풀 장 瑞: 상서 서 圖: 그림 도 -
김경서
(金景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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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1564~1624). 초명은 응서(應瑞). 자는 성보(聖甫). 임진왜란 때 많은 무공을 세우고, 포도대장, 북로 방어사 등을 지냈으며, 명나라의 요청으로 후금을 치기 위하여 출정하였다가 강홍립이 항복할 때 함께 포로가 되었다. 적정(敵情)을 기록하여 조선에 보내려다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 金: 성 김 景: 경치 경 瑞: 상서 서 -
홍서봉
(洪瑞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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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조 때의 문신(1572~1645). 자는 휘세(輝世). 호는 학곡(鶴谷). 1623년에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병조 참의가 되고, 병자호란 때에 최명길과 함께 화의를 주장하였다.
🌏 洪: 큰 물 홍 瑞: 상서 서 鳳: 봉새 봉 - 돤치루이 (Duan Qirui[段祺瑞]) : 중국의 군벌(軍閥) 정치가(1865~1936). 안후이성(安徽省) 사람으로 안후이파 군벌의 수령이었다. 독일에서 군사학을 배우고 돌아와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심복 부하가 되었으며 전후 다섯 번이나 국무총리가 되었으나 혁명파와의 암투로 사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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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서린
(孔瑞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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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인(1483~1541). 자는 희성(希聖). 호는 휴암(休巖). 기묘사화 때 투옥되었으며, 그 후 기묘사화 때 화를 입은 선비들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여러 번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대사헌, 황해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 孔: 구멍 공 瑞: 상서 서 麟: 기린 린 -
김종서
(金宗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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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충신(1383~1453).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재(節齋). 태종 5년(1405)에 문과에 급제하고, 함길도 절제사를 거쳐 우의정을 지냈다. 육진(六鎭)을 개척하여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을 확정하였다. ≪고려사≫의 개찬(改撰), ≪고려사절요≫의 편찬을 총관하였다. 수양 대군에 의하여 두 아들과 함께 격살(擊殺)되었다.
🌏 金: 성 김 宗: 마루 종 瑞: 상서 서 -
오상서
(吳祥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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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1937). 일명 상세(祥世). 호는 청호(淸湖). 1920년에 청산리 전투에 참가하였고, 후에 지린성(吉林省) 자위군의 대대장ㆍ만주 항일군 군정 위원 등으로 활약하였다.
🌏 吳: 나라 이름 오 祥: 상서로울 상 瑞: 상서 서 -
단기서
(段祺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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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돤치루이. (돤치루이: 중국의 군벌(軍閥) 정치가(1865~1936). 안후이성(安徽省) 사람으로 안후이파 군벌의 수령이었다. 독일에서 군사학을 배우고 돌아와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심복 부하가 되었으며 전후 다섯 번이나 국무총리가 되었으나 혁명파와의 암투로 사임하였다.)
🌏 段: 구분 단 祺: 길할 기 瑞: 상서 서 -
안서우
(安瑞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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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1664~1735). 자는 봉거(鳳擧). 호는 양기옹(兩棄翁)ㆍ양기재(兩棄齋). 태안 군수와 울산 부사를 지냈으며, 저서에 ≪양기재산고(兩棄齋散藁)≫가 있다.
🌏 安: 편안할 안 瑞: 상서 서 羽: 깃 우 -
조지서
(趙之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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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신(1454~1504). 자는 백부(伯符). 호는 지족(知足)ㆍ충헌(忠軒). 연산군이 세자 때에 보덕(輔德)으로 풍간(諷諫)하면서 집요하게 학문을 진강(進講)하여 미움을 받았으며, 1504년 갑자사화 때에 참수되었다. 성종 때에 청백리로 인정되었다.
🌏 趙: 나라 조 之: 갈 지 瑞: 상서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