求 🌏한자(사자성어) 💡인명 분야 7개
-
이서구
(李瑞求)
:
극작가ㆍ언론인(1899~1982). 1920년 ≪동아일보≫ 창간에 참여하고 이후 ≪조선일보≫와 ≪매일신보≫를 거쳐서 연극 활동에 가담하였다. 광복 후에 방송극을 집필, 극작가 협회 회장과 방송인 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작품에 <동백꽃>, <어머니의 힘>, <장 희빈>, <강화 도령> 따위가 있다.
🌏 李: 오얏 이 瑞: 상서 서 求: 구할 구 -
염구
(冉求)
:
중국 춘추 시대의 노나라 사람(?~?). 자는 자유(子有). 염유(冉有)라고도 한다. 공문십철의 한 사람으로, 정사(政事)에 뛰어났다.
🌏 冉: 늘어질 염 求: 구할 구 -
이성구
(李聖求)
:
조선 인조 때의 문신(1584~1644). 자는 자이(子異). 호는 분사(分沙)ㆍ동사(東沙). 대사헌, 병조 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영의정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에 왕을 호종(扈從)하였고 왕세자가 볼모로 심양(瀋陽)에 갈 때에 수행하였다.
🌏 李: 오얏 이 聖: 성인 성 求: 구할 구 -
강재구
(姜在求)
:
군인(1937~1965). 1965년에 월남 파병 부대의 중대장으로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시키던 중, 부하 사병의 실수로 중대 한가운데로 떨어진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어 부하의 생명을 구하고 죽었다.
🌏 姜: 성 강 在: 있을 재 求: 구할 구 -
윤희구
(尹喜求)
:
구한말의 한문학자(1867~1926). 자는 주현(周賢). 호는 우당(于堂). 광무 1년(1897) 사례소(史禮所)에서 장지연과 함께 ≪대한예전(大韓禮典)≫을 편찬하고 ≪문헌비고(文獻備考)≫를 증수하였으며, 규장각에 들어가 ≪양조보감(兩朝寶鑑)≫을 지었다. 장지연, 오세창 등과 함께 ≪대동시선≫을 교열하였다. 저서에 ≪우당시문집≫이 있다.
🌏 尹: 다스릴 윤 喜: 기쁠 희 求: 구할 구 -
윤용구
(尹用求)
:
구한말의 문신(文臣)ㆍ서화가(1853~1939). 자는 주빈(周賓). 호는 석촌(石村)ㆍ해관(海觀)ㆍ장위산인(獐位山人). 예조 판서와 이조 판서를 지낸 뒤, 모든 관직을 사양하고 서울 근교의 장위산 밑에 은거하였다.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났으며, 특히 해서(楷書)ㆍ행서(行書)ㆍ금석문(金石文)을 많이 썼다.
🌏 尹: 다스릴 윤 用: 쓸 용 求: 구할 구 -
이헌구
(李軒求)
:
평론가(1905~1982). 호는 소천(宵泉). 해외 문학 연구회, 극예술 연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주로 서구 문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국 문학을 분석하였다. 저서에 평론집 ≪문화와 자유≫, ≪모색의 도정(途程)≫ 따위가 있다.
🌏 李: 오얏 이 軒: 추녀 헌 求: 구할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