永 🌏한자(사자성어) 💡인명 분야 3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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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
(智永)
:
중국 수나라의 서예가ㆍ승려(?~?). 속성(俗姓)은 왕(王). 이름은 법극(法極). 왕희지의 7대손으로, 여러 체의 글씨를 잘 썼다. 작품에 <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이 전한다.
🌏 智: 지혜 지 永: 길 영 -
성영달
(成永達)
:
조선 선조 때의 무신(?~1592).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 병마우후로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나,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 成: 이룰 성 永: 길 영 達: 통할 달 -
김영후
(金永煦)
:
고려 말기의 문신(1292~1361). 호는 균헌(筠軒). 1343년에 충혜왕이 원나라에 잡혀갈 때에 백관이 모두 도망갔으나 홀로 목숨을 걸고 호위하였고, 나중에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다.
🌏 金: 성 김 永: 길 영 煦: 따뜻하게 할 후 -
남영로
(南永魯)
:
조선 후기의 문인(1810~1857). 호는 담초(潭樵). 문장과 서화에 능하였고, <옥루몽>과 <옥련몽>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南: 남녘 남 永: 길 영 魯: 노둔할 로 -
고영희
(高永喜)
:
구한말의 대신(1849~?). 신사 유람단(紳士遊覽團)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왔고 탁지대신을 지냈으며 변절하여 국권 강탈을 지지하는 등 일제의 앞잡이로 활동하였다.
🌏 高: 높을 고 永: 길 영 喜: 기쁠 희 -
영재
(永才)
:
신라 원성왕 때의 승려(?~?). 향가를 잘 지었다. 작품에 <우적가> 따위가 있다.
🌏 永: 길 영 才: 재주 재 -
조만영
(趙萬永)
:
조선 후기의 문신(1776~1846). 자는 윤경(胤卿). 호는 석애(石厓). 순조 19년(1819)에 딸이 세자빈이 되자 풍은 부원군(豐恩府院君)으로 봉해졌으며, 이후 풍양 조씨의 중심인물로서 안동 김씨와 권력 투쟁을 벌였다. 저서에 ≪동원인물고(東援人物考)≫가 있다.
🌏 趙: 나라 조 萬: 일만 만 永: 길 영 -
나인영
(羅寅永)
:
‘나철’의 성과 본명을 함께 이르는 이름. (나철: 대종교의 창시자(1863~1916). 본명은 인영(寅永). 호는 홍암(弘巖).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나라를 판 대신들을 죽이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융희 3년(1909)에 대종교의 교리를 포교하였고, 저서에 ≪삼일신고≫ 따위가 있다.)
🌏 羅: 그물 나 寅: 동방 인 永: 길 영 -
유영
(柳永)
:
중국 북송(北宋)의 시인(?~?). 자는 기경(耆卿). 만사(慢詞)의 창시자로, 구어를 많이 사용한 속요풍의 사(詞)를 지었다. 사집(詞集)으로 ≪악장집≫이 있다.
🌏 柳: 버들 유 永: 길 영 -
함태영
(咸台永)
:
독립운동가ㆍ종교인ㆍ정치가(1873~1964). 호는 송암(松岩). 3ㆍ1 운동 때에 민족 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투옥된 후에 출옥하여 목사가 되어 교회 사업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8ㆍ15 광복 후에 심계원장, 한국 신학 대학장을 거쳐 1952년에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 咸: 다 함 台: 별 태 永: 길 영 -
혜영
(惠永)
:
고려 충렬왕 때의 승려(1228~1294). 속성은 강(康). 중국 원나라 경수사(慶壽寺)에서 대장경을 베껴 왔으며, 국존(國尊)에 봉하여졌다.
🌏 惠: 은혜 혜 永: 길 영 -
김영석
(金永錫)
:
고려 시대의 문신(1079~1167). 첨사부 주부ㆍ북로 원수(北路元帥)를 지냈으며, 송나라 및 신라의 의서 ≪제중입효방(濟衆立效方)≫을 편술하였다.
🌏 金: 성 김 永: 길 영 錫: 주석 석 -
황사영
(黃嗣永)
:
조선 후기의 천주교도(1775~1801). 자는 덕소(德召). 세례명은 알렉산드르. 1794년에 천주교 최초의 선교사인 주문모에게 교리를 배우고 영세를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에 토굴 속에 숨어 ‘황사영백서’를 써 중국 베이징의 주교에게 전하려 하였으나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황사영 백서: 조선 순조 원년(1801)에, 황사영이 신유박해의 내용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주교 구베아에게 알리려고 비단에 적은 글. 천주교 박해에 대한 사정을 알리고 우리나라 교회 재흥ㆍ개국 촉진을 요청한 것으로, 현재 로마 교황청에 보관되어 있다.)
🌏 黃: 누를 황 嗣: 이을 사 永: 길 영 -
임영신
(任永信)
:
교육자(1899~1977). 호는 승당(承堂). 3ㆍ1 운동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중앙 보육 학원을 인수하여 현재의 중앙 대학교로 키웠다. ≪상공일보≫와 ≪경제일보≫의 사장을 지내는 등 언론계에서도 활약하였다.
🌏 任: 맡길 임 永: 길 영 信: 믿을 신 -
이기영
(李箕永)
:
소설가(1895~1984). 호는 민촌(民村). 1924년 ≪개벽≫지 현상 문예에 <옵바의 비밀 편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카프 동맹원으로 활동하였고 광복 이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을 조직하고, 곧 월북하였다. 작품에 <서화(鼠火)>, <고향>, <두만강> 따위가 있다.
🌏 李: 오얏 이 箕: 키 기 永: 길 영 -
지운영
(池運永/池雲英)
:
조선 고종 때의 관리ㆍ서예가(1852~1935). 호는 설봉(雪峯)ㆍ백련(百蓮). 고종 21년(1884)에 사대당의 밀명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김옥균, 박영효 등을 암살하려다 붙잡혀 영변(寧邊)에 유배되었다. 유불선에 두루 통하였고, 시, 서예, 그림에 뛰어나 삼절(三絕)이라고 불리었다.
🌏 池: 못 지 물 이름 타 運: 운전할 운 永: 길 영 池: 못 지 물 이름 타 雲: 구름 운 英: 꽃부리 영 -
김영랑
(金永郞)
:
시인(1903~1950). 본명은 윤식(允植). ≪시 문학≫ 동인으로 참여하였으며, 잘 다듬어진 언어로 한국적 정서를 담은 서정시를 발표하여 순수 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시집에 ≪영랑 시집≫, ≪영랑 시선(詩選)≫ 따위가 있다.
🌏 金: 성 김 永: 길 영 郞: 사나이 랑 -
김영덕
(金永悳)
:
조선 후기의 문신(1859~1910). 자는 수경(樹卿). 여주 목사, 동래 부사, 감리부산항통상사무(監理釜山港通商事務)를 지냈고 1910년에 국권이 강탈되자 자결하였다.
🌏 金: 성 김 永: 길 영 悳: 덕 덕 -
이세영
(李世永)
:
독립운동가(1869~1938). 자는 좌현(佐顯). 호는 고광(古狂)ㆍ고광자(古狂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참모장이 되어 홍주, 남포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패전하여 황주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뒤에 신흥 무관 학교 교장과 상하이(上海) 임시 정부 참모부 차장을 지냈다.
🌏 李: 오얏 이 世: 세대 세 永: 길 영 - 도모나가 신이치로 (Tomonaga Shin’ichirô[朝永振一郞]) : 일본의 물리학자(1906~1979). 양자 전자 역학을 전공하여 초다시간 이론, 도모나가 슈빙거 이론 따위의 업적을 남겼다.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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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영
(姜時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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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신(1788~?). 자는 여량(汝亮). 순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찬성을 지내고, 고종 3년(1866)에 홍문관 제학을 거쳐 이조 판서를 지냈다.
🌏 姜: 성 강 時: 때 시 永: 길 영 -
최순영
(崔淳永)
:
구한말의 국악인(1864~1940). 일명 순용(淳龍/淳用). 자는 경화(景和). 피리의 명수로 고종 때 장악원의 악공이 되고 이후 아악수장(雅樂手長)을 거쳐 아악사를 지냈다.
🌏 崔: 높을 최 淳: 순박할 순 永: 길 영 -
김수영
(金壽永)
:
조선 후기의 판소리 명창(?~?). 서편제의 명창으로서 특히 중모리장단에 뛰어났으며, <수궁가>를 잘 불렀다.
🌏 金: 성 김 壽: 목숨 수 永: 길 영 -
오영수
(吳永壽)
:
소설가(1914~1979). 호는 월주(月洲). 인정과 윤리 의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선(善)을 긍정하는 작품을 썼다. 작품에 <머루>, <갯마을>, <명암(明暗)>, <메아리>, <수련(睡蓮)>, <황혼> 따위가 있다.
🌏 吳: 나라 이름 오 永: 길 영 壽: 목숨 수 -
정극영
(鄭克永)
:
고려 시대의 문신ㆍ학자(1067~1127). 자는 사고(師古). 중서사인을 거쳐 보문각 학사를 지냈으며, 중국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문명(文名)을 크게 떨쳤다.
🌏 鄭: 나라 이름 정 克: 이길 극 永: 길 영 -
영기
(永奇)
:
조선 후기의 승려(1820~1872). 속성은 정(鄭). 호는 남호(南湖). 불경 간행과 보관에 힘써 철종 4년(1853)부터 고종 2년(1865)에 ≪아미타경≫, ≪십육관경(十六觀經)≫, ≪연종보감(蓮宗寶鑑)≫을 간인(刊印)하고, ≪화엄경소초(華嚴經疏鈔)≫, ≪별행(別行)≫, ≪해인사 대장경≫을 판각하였다.
🌏 永: 길 영 奇: 기이할 기 -
지석영
(池錫永)
:
의학자ㆍ국어학자(1855~1935). 자는 공윤(公胤). 호는 송촌(松村). 1899년에 경성 의학교를 세웠고, 일본에서 종두 제조법을 배워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종두를 시행하여 국민 보건에 이바지하였다. 국어학도 깊이 연구하여 1905년에 <신정국문(新訂國文)> 6개조를 상소하였고, 국문 연구소를 설치하였다. 저서에 ≪우두신설≫이 있고, ≪자전석요≫를 편찬하였다.
🌏 池: 못 지 錫: 주석 석 永: 길 영 -
우하영
(禹夏永)
:
조선 정조 때의 학자(1741~1812). 자는 대유(大猶). 호는 취석실(醉石室). 초시에 12회나 합격하였으나 회시(會試)에는 번번이 낙방하여, 농사에 종사하며 학문에 힘썼다. 시무책을 상소하고, 순조 때에 <천일록(千一錄)>을 올렸다.
🌏 禹: 하우씨 우 夏: 여름 하 永: 길 영 -
영락제
(永樂帝)
:
중국 명나라의 제3대 황제(1360~1424). 묘호는 태종(太宗)ㆍ성조(成祖).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영락대전≫, ≪사서대전(四書大典)≫ 따위를 편찬하게 하여 학술을 장려했다. 재위 기간은 1402~1424년이다.
🌏 永: 길 영 樂: 즐길 락 帝: 임금 제 -
유영복
(劉永福)
:
중국 청나라 말기의 민족 운동 지도자(1837~1917). 태평천국 운동 후에 베트남으로 피신하여 흑기병을 조직하고 프랑스의 침략에 대항하였으며, 청일 전쟁 후에는 일본의 대만 영유(領有)에 반대하여 항일 운동을 벌였다.
🌏 劉: 죽일 유 永: 길 영 福: 복 복 -
유영경
(柳永慶)
:
조선 선조 때의 문신(1550~1608). 자는 선여(善餘). 호는 춘호(春湖).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고, 북인이 대ㆍ소로 분당될 때 소북의 영수가 되었으며, 선조 말 광해군 대신 영창 대군을 옹립하려다가 대북 일파의 탄핵으로 사약을 받았다.
🌏 柳: 버들 유 永: 길 영 慶: 경사 경 -
영창 대군
(永昌大君)
:
조선 선조의 아들(1606~1614). 이름은 의(㼁). 정비(正妃) 인목 왕후(仁穆王后)의 소생이었으나 이이첨 등의 무고로 강화에 유배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 永: 길 영 昌: 창성할 창 大: 큰 대 君: 임금 군 -
강도영
(姜道永)
:
가톨릭 신부(1863~1929). 처음으로 우리나라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한국인 신부 3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1896년에 약현(藥峴)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으며,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본당의 초대 한국인 신부로 부임하여 김대건 신부의 경당(經堂)을 건립하였다.
🌏 姜: 성 강 道: 길 도 永: 길 영 -
조인영
(趙寅永)
:
조선 헌종 때의 문신(1782~1850). 자는 희경(羲卿). 호는 운석(雲石). 헌종 1년(1835)에 순원 왕후를 배경으로 한 안동 김씨 일파의 세도 정치에 대항하였고, 헌종 5년에 기해박해를 일으켜 천주교를 탄압하였다. 그 후 네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다. 문집에 ≪운석유고≫가 있다.
🌏 趙: 나라 조 寅: 동방 인 永: 길 영 -
엄세영
(嚴世永)
:
구한말의 문신(1831~1900). 자는 윤익(允翼), 호는 범재(凡齋). 1881년에 신사 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 한성부 좌윤ㆍ대사헌 등을 지냈다. 저서에 편저 ≪일본시찰서계(日本視察書啓)≫가 있다.
🌏 嚴: 엄할 엄 世: 세대 세 永: 길 영 -
영명왕
(永明王)
: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1625~1662). 영력제(永曆帝)라고도 하며, 청군(淸軍)의 공격을 받고 미얀마 등지로 도피 생활을 하였다. 재위 기간은 1647~1662년이다.
🌏 永: 길 영 明: 밝을 명 王: 임금 왕 -
김영수
(金永壽)
:
소설가ㆍ극작가(1911~1977). 1934년에 ≪동아일보≫에 희곡 <동맥(動脈)>이, 1939년에 ≪조선일보≫에 소설 <소복(素服)>이 당선된 이래, 희곡ㆍ소설 따위의 많은 작품을 썼다. 작품에 소설 <파도(波濤)>, 희곡 <혈맥(血脈)> 따위가 있다.
🌏 金: 성 김 永: 길 영 壽: 목숨 수 -
영락 대왕
(永樂大王)
:
‘광개토왕’의 다른 이름. 연호를 영락이라고 한 데서 이르는 말이다. (광개토왕: 고구려 제19대 왕(374~412). 이름은 담덕(談德). 고국양왕의 태자로 18세에 왕위에 올랐다. 불교를 신봉하였고, 남북으로 영토를 크게 넓혀 만주와 한강 이북을 차지하는 등 고구려의 전성시대를 이룩하였다. 재위 기간은 391~412년이다.)
🌏 永: 길 영 樂: 즐길 락 大: 큰 대 王: 임금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