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한자(사자성어) 💡2 글자 101개
李:
오얏 리
오얏 이
총획:7
부수:木
국어사전에서 🌏한자 "李 (오얏 리, 오얏 이)" 단어 중에서, '글자수 2개'의 단어는 101개 입니다.
💡통계
품사
분야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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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글자
-
이색
(李穡)
:
고려 말기의 문신ㆍ학자(1328~1396).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 중국 원나라에 가서 과거에 급제하고, 귀국하여 우대언(右代言)과 대사성 따위를 지냈다. 삼은의 한 사람으로, 문하에 권근과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학문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조선 개국 후 태조가 여러 번 불렀으나 절개를 지키고 나가지 않았다. 저서에 ≪목은시고(牧隱詩藁)≫, ≪목은문고(牧隱文藁)≫ 따위가 있다.
🌏 李: 오얏 이 穡: 거둘 색 -
이연
(李淵)
:
중국 당나라의 제1대 황제인 ‘고조’의 본명. (고조: 중국 당나라의 제1대 황제(565~635). 성은 이(李). 이름은 연(淵). 자는 숙덕(叔德). 수나라 태원 유수(太原留守)로 임명되었다가, 고구려 원정의 실패로 수나라가 흔들리자 군사를 일으켜 수나라를 멸망시키고 당나라를 세웠다. 재위 기간은 618~626년이다.)
🌏 李: 오얏 이 淵: 못 연 -
이전
(李佺)
:
‘능창대군’의 본명. (능창 대군: 조선 인조의 아우(1599~1615). 이름은 전(佺). 광해군에게 시기를 받아 오다가, 1615년 신경희(申景禧)의 추대로 왕이 되고자 한다는 혐의로 사형당하였다. 인조 10년(1632) 대군(大君)으로 추봉(追封)되었다.)
🌏 李: 오얏 이 佺: 신선 이름 전 -
이적
(李勣)
:
중국 당나라의 무장(?~669). 이정(李靖)과 함께 태종을 도와 당나라의 국내 통일에 힘썼다. 이후 동돌궐을 정복하고 644년과 666년의 두 차례에 걸쳐 고구려에 침입, 668년 보장왕의 항복을 받아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 李: 오얏 이 勣: 공적 적 -
이행
(李荇)
:
조선 중종 때의 문신(1478~1534).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ㆍ창택어수(滄澤漁水)ㆍ청학도인(靑鶴道人). 갑자사화 때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유배되었으나, 기묘사화 후 입조(入朝)하여 대제학, 이조 판서, 우의정 등을 지냈다. 저서에 ≪용재집≫이 있다.
🌏 李: 오얏 이 荇: 마름 행 -
이하
(李賀)
: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790~816). 자는 장길(長吉). 시작(詩作)에 몰두하여 15세 때에 그 이름이 알려졌으며, 몽환적인 인상과 기이한 분위기의 시로 귀재(鬼才)라는 평을 받았다. 작품에 시집 ≪이하가시편(李賀歌詩篇)≫, ≪창곡집(昌谷集)≫ 따위가 있다.
🌏 李: 오얏 이 賀: 하례할 하 -
이시
(李詩)
: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인 이백(李白)이 쓴 시를 통틀어 이르는 말.
🌏 李: 오얏 이 詩: 시 시 -
이황
(李滉)
:
조선 시대의 유학자(1501~1570).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ㆍ퇴도(退陶)ㆍ도수(陶叟). 벼슬은 예조 판서, 양관 대제학 따위를 지냈다. 정주(程朱)의 성리학 체계를 집대성하여 이기 이원론(理氣二元論), 사칠론(四七論)을 주장하였다. 작품에 시조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저서에 ≪퇴계전서(退溪全書)≫ 따위가 있다.
🌏 李: 오얏 이 滉: 물 깊고 넓을 황 -
이지
(李贄)
:
중국 명나라의 사상가ㆍ비평가(1527~1602). 호는 탁오(卓吾). 양명학의 영향을 받아 유심론을 주장하며 형식적 교리와 예절에 반대, 도덕 지상주의를 비판하고 능력주의를 호소하였으며 <수호전>, <금병매> 따위의 서민 문학을 높이 평가하였다. 저서에 ≪분서(焚書)≫, ≪장서(藏書)≫ 따위가 있다.
🌏 李: 오얏 이 贄: 폐백 지 -
이익
(李瀷)
:
조선 영조 때의 학자(1681~1763). 자는 자신(自新). 호는 성호(星湖). 유형원의 학풍을 이어받아 실학의 대가가 되었으며 특히 천문, 지리, 의학, 율산(律算), 경사(經史)에 업적을 남겼다. 관계(官界)에 나가지 않고 저술과 후진 양성에 전력하였다. 저서에 ≪성호사설≫, ≪성호문집≫이 있다.
🌏 李: 오얏 이 瀷: 스며 흐를 익 -
이직
(李稷)
: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1362~1431). 자는 우정(虞庭). 호는 형재(亨齋). 이성계를 도와 개국 공신이 되었으며, 왕자의 난 때에는 이방원을 도와 좌명공신이 되었다. 벼슬은 대제학, 이조 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저서에 ≪형재시집≫이 있다.
🌏 李: 오얏 이 稷: 기장 직 -
이명
(李蓂)
:
조선 명종 때의 문신(1496~1572). 자는 요서(堯瑞). 호는 동고(東皐). 명종 8년(1553) 이조 참판 때 을사사화로 화를 입은 사람의 신원(伸冤)을 주장하여 왕의 승낙을 얻고 형조 판서에 승진하였으며, 후에 좌의정에 올랐다.
🌏 李: 오얏 이 蓂: 명협 명 -
이재
(李在)
:
조선 후기의 문인(?~?). 벼슬은 영주 군수를 거쳐 한성부 서윤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으며 ≪화원악보≫, ≪해동가요≫에 시조 2수가 전한다.
🌏 李: 오얏 이 在: 있을 재 -
이화
(李花)
:
1
자두나무의 꽃.
2
조선 후기에, 관리들이 쓰던 휘장(徽章).
3
모자에 붙이는 일정한 표지.
🌏 李: 오얏 이 花: 꽃 화 -
이우
(李瑀)
:
조선 시대의 서화가(1542~1609). 자는 계헌(季獻). 호는 옥산(玉山)ㆍ죽와(竹窩)ㆍ기와(寄窩). 신사임당의 넷째 아들로, 벼슬은 군자감 정(軍資監正)을 지냈다. 거문고, 시(詩), 서(書), 화(畫)에 능하여 사절(四絕)이라 불리었다. 작품에 <설중매죽도(雪中梅竹圖)>가 있다.
🌏 李: 오얏 이 瑀: 패옥 우 -
이개
(李塏)
:
조선 전기의 문신(1417~1456). 자는 청보(淸甫)ㆍ백고(伯高). 호는 백옥헌(白玉軒). 직제학을 지냈으며, 시문이 청절(淸節)하고 글씨를 잘 썼다.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으로, 세조 2년(1456)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처형되었다.
🌏 李: 오얏 이 塏: 높은땅 개 -
이암
(李嵒)
:
고려 시대의 문신ㆍ서화가(1297~1364). 자는 고운(古雲). 호는 행촌(杏村). 찬성사, 좌정승,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을 지냈다. 글씨에 뛰어나 동국(東國)의 조자앙(趙子昻)으로 불리었으며, 그림으로는 묵죽(墨竹)에 능하였다.
🌏 李: 오얏 이 嵒: 바위 암 -
이원
(李原)
:
고려 말기ㆍ조선 전기의 문신(1368~1430). 자는 차산(次山). 호는 용헌(容軒). 15세에 진사, 18세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우의정을 지냈다.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 李: 오얏 이 原: 근원 원 -
이변
(李邊)
:
조선 세조 때의 명신(名臣)(1391~1473). 공조 판서와 중추원 부사 등을 역임했고, 1472년에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 특히 한훈(漢訓)에 정통하여 사역원(司譯院)의 제조(提調)를 겸하면서 많은 공을 세웠다.
🌏 李: 오얏 이 邊: 가 변 -
이건
(李健)
:
조선 효종 때의 문인(1614~1662). 자는 자강(子強). 호는 규창(葵窓). 선조의 손자이며 인성군(仁城君) 공(珙)의 아들이다. 시ㆍ서ㆍ화에 뛰어나 삼절(三絕)이라 일컬었다. 저서로 ≪규창집≫이 있다.
🌏 李: 오얏 이 健: 굳셀 건 -
이첨
(李詹)
:
고려 말기ㆍ조선 초기의 문신(1345~1405). 자는 중숙(中叔). 호는 쌍매당(雙梅堂). 고려 말기에 좌대언, 지신사를 지내고 조선 초기에 예문관 대제학을 지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삼국사략≫을 찬수(纂修)하였다. 작품에 소설 <저생전>이 있다.
🌏 李: 오얏 이 詹: 이를 첨 -
이적
(李迪)
:
중국 남송의 화가(?~?). 휘종 선화 연간(宣和年間)에 화원(畫院)에 들어가 성충랑(成忠郞)이 되었다. 섬세한 선과 선명하고 고운 채색으로 사생적 작품을 남겼으며 원체 화조화의 대표적 화가이다. 작품에 <홍백부용도>가 있다.
🌏 李: 오얏 이 迪: 나아갈 적 -
이영
(李寧)
:
고려 시대의 화가(?~?). 그림에 뛰어나 인종과 의종의 총애를 받고 내합(內閤)의 그림에 관한 일을 주재하였다. 중국 송나라에 갔을 때에 휘종에게 <예성강도>를 그려 바쳤다.
🌏 李: 오얏 이 寧: 편안할 영 -
이서
(李緖)
:
조선 중기의 문인(1482~?). 자는 계숙(繼叔). 유배 생활을 하다가 풀려나 담양(潭陽)에 한거(閑居)하면서 후학을 가르쳤다. 작품에 가사 <낙지가(樂志歌)>가 있다.
🌏 李: 오얏 이 緖: 실마리 서 -
이인
(李仁)
:
변호사ㆍ정치가(1896~1979). 호는 애산(愛山). 독립투사를 위해 법정 투쟁을 하였으며 조선어 학회 사건에 관련되어 옥고를 치렀다. 8ㆍ15 광복 후 초대 법무부 장관, 제헌 의원을 지냈다. 저서에 ≪법률과 경제≫, ≪반세기의 증언≫이 있다.
🌏 李: 오얏 이 仁: 어질 인 -
이조
(李朝)
:
베트남의 왕조. 10세기 중엽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세워졌으며, 1009년부터 1225년까지 존속하였다. 시조는 이공온(李公蘊), 수도는 승룡(昇龍), 곧 지금의 하노이이며, 베트남 최초의 지속적인 왕조로서 대월(大越)이라 이름하였다.
🌏 李: 오얏 이 朝: 아침 조 -
이광
(李珖)
:
조선 인조 때의 서예가(1589~1645). 자는 장중(藏中). 호는 기천(杞泉). 봉명(封名)은 의창군(義昌君). 선조의 여덟째 아들로 해자(楷字)에 뛰어나서 그의 편액과 금석문은 국보급으로 친다.
🌏 李: 오얏 이 珖: 옥 피리 광 -
이항
(李恒)
:
조선 명종 때의 유학자(1499~1576). 자는 항지(恒之). 호는 일재(一齋). 박영(朴英)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이기 일원론을 발전시켜 성리학의 대가로 꼽혔다. 저서에 ≪일재집≫이 있다.
🌏 李: 오얏 이 恒: 항상 항 -
이진
(李眞)
:
중국 당나라의 화가(?~?). 장안(長安)의 초복사(招福寺)를 비롯하여 많은 사원에 벽화를 그렸고, 인물화에 뛰어나 주방(周昉)과 쌍벽을 이루었다. 작품에 <진언오조상(眞言五祖像)> 따위가 있다.
🌏 李: 오얏 이 眞: 참 진 -
이혼
(李混)
:
고려 말기의 문신(1252~1312). 자는 거화(去華)ㆍ태초(太初)ㆍ일우(一宇). 호는 몽암(蒙菴). 벼슬은 첨의정승(僉議政丞)에 이르렀다. 시문(詩文)에 능하며, 특히 단구(短句)에 뛰어났다.
🌏 李: 오얏 이 混: 섞을 혼 -
이하
(李下)
:
자두나무 밑에서는 갓을 바루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두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면 도둑으로 오인되기 쉬우니 남에게 의심 살 만한 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말. ≪문선(文選)≫의 <군자행(君子行)>에 나오는 말이다.
🌏 李: 오얏 이 下: 아래 하 -
이활
(李活)
:
‘이육사’의 본명. (이육사: 시인(1904~1944). 본명은 원록(源祿)ㆍ활(活). 자는 태경(台卿). 1937년 윤곤강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하였다. 상징주의적이고도 웅혼한 시풍으로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비극과 의지를 노래하였다. 민족 운동과 관련된 혐의로 체포되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작품에 시집 ≪청포도≫, 유고집 ≪육사 시집≫이 있다.)
🌏 李: 오얏 이 活: 살 활 -
이정
(李楨)
:
조선 명종 때의 학자(1512~1571). 자는 강이(剛而). 호는 구암(龜巖). 벼슬은 대사간, 대사성을 거쳐 부제학을 지냈다. 저서에 ≪귀암집≫, ≪성리유론(性理遺論)≫이 있다.
🌏 李: 오얏 이 楨: 광나무 정 -
이탁
(李鐸)
:
독립운동가(1889~1930). 자는 태연(跆然). 호는 동우(東愚/東禹). 본명은 제용(濟鏞). 일명 동우(東雨)ㆍ춘우(春雨). 국권 강탈 후 남만주(南滿洲)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0년에 상하이 임시 정부 광복군 사령부 참모장이 되었고, 1922년에는 시사 책진회(時事策進會)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 李: 오얏 이 鐸: 방울 탁 -
이우
(李俁)
:
조선 시대의 서화가(1637~1693). 자는 석경(碩卿). 호는 관란정(觀瀾亭). 글씨에 능하여 모든 서체를 다 잘 썼으며, 많은 비액(碑額)을 남겼다. 현종 때에 왕자들과 함께 칠조(七朝)의 어필(御筆)을 모사(模寫)하여 간행하였다.
🌏 李: 오얏 이 俁: 클 우 -
이식
(李植)
:
조선 인조 때의 명신(名臣)(1584~1647).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ㆍ남궁외사(南宮外史). 한학 4대가의 한 사람으로 이조 판서를 지냈다. 병자호란 때에 척화파(斥和派)로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왔다. ≪선조실록≫을 전담하여 수정하였으며, 저서에 문집 ≪택당집≫이 있다.
🌏 李: 오얏 이 植: 심을 식 -
이명
(李溟)
:
조선 인조 때의 문신(1570~1648). 자는 자연(子淵). 호는 구촌(龜村). 경기도ㆍ경상도ㆍ전라도ㆍ평안도 등의 관찰사를 맡아 전란의 수습과 국방의 강화에 기여하였고, 국고를 불리는 한편 물가를 안정시켰다.
🌏 李: 오얏 이 溟: 바다 명 -
이두
(李杜)
:
이백과 두보를 아울러 이르는 말.
🌏 李: 오얏 이 杜: 막을 두 -
자리
(紫李)
:
자두나무의 열매. 살구보다 조금 크고 껍질 표면은 털이 없이 매끈하며 맛은 시큼하며 달콤하다.
🌏 紫: 자주 빛 자 李: 오얏 리 -
이진
(李瑱)
:
고려 충숙왕 때의 문신(1244~1321). 초명은 방연(芳衍). 자는 온고(溫古). 호는 동암(東庵). 벼슬은 검교 첨의정승에 이르렀으며, 시문에 뛰어났다. 저서에 ≪동암집≫이 있다.
🌏 李: 오얏 이 瑱: 귀막이 옥 진 -
이곡
(李穀)
:
고려 말기의 학자(1298~1351). 자는 중보(仲父). 호는 가정(稼亭). 충숙왕 복위 2년(1333)에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한 후, 원제(元帝)에게 건의하여 고려에서의 처녀 징발을 중지시켰다. 충렬ㆍ충선ㆍ충숙왕의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죽부인을 의인화한 가전체 작품 <죽부인전>이 ≪동문선≫에 전한다. 저서에 ≪가정집≫이 있다.
🌏 李: 오얏 이 穀: 곡식 곡 -
이택
(李澤)
:
조선 명종 때의 문신(1509~1573). 자는 택지(澤之). 벼슬은 예조 참판에 이르렀으며, 문서를 잘 썼으므로 항상 승문원의 벼슬을 겸직하였다. 사예(射藝)와 시문에 능하였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 李: 오얏 이 澤: 못 택 -
우리
(牛李)
:
갈매나뭇과의 낙엽 활엽 관목. 높이는 2~5미터이며, 가지 끝이 가시로 변한다. 잎은 마주나고 톱니가 있으며, 5월에 연한 황록색의 잔꽃이 잎겨드랑이에 한두 송이씩 핀다. 열매는 약용하고 나무껍질은 염료로 쓴다. 골짜기나 개울가에서 자라는데 경북, 충남을 제외한 한국 각지와 우수리강,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 牛: 소 우 李: 오얏 리 -
이달
(李達)
:
조선 선조 때의 한시의 대가(1539~1612).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ㆍ서담(西潭)ㆍ동리(東里). 최경창ㆍ백광훈과 함께 당시(唐詩)에 능하여 ‘삼당’(三唐)이라 불렸다. (삼당: 조선 중종과 선조 대에 걸쳐 시명(詩名)을 떨친 세 사람의 시인. 백광훈, 최경창, 이달을 이른다.)
🌏 李: 오얏 이 達: 통할 달 -
이유
(李濡)
:
조선 숙종 때의 문신(1645~1721). 자는 자우(子雨). 호는 녹천(鹿川). 좌의정과 우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으며 한림(翰林)에 들어가 당론 타파를 주장하고, 1703년 중앙 관제의 일부를 개혁하였다. 1709년에는 북한산성을 신축할 것을 주장하여 이를 담당하였다.
🌏 李: 오얏 이 濡: 적실 유 -
이이
(李珥)
:
조선 중기의 문신ㆍ학자(1536~1584).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ㆍ석담(石潭)ㆍ우재(愚齋). 호조, 이조, 병조 판서, 우찬성을 지냈다. 서경덕의 학설을 이어받아 주기론을 발전시켜 이황의 주리적(主理的) 이기설과 대립하였다. 저서에 ≪율곡전서≫, ≪성학집요≫, ≪경연일기≫가 있다.
🌏 李: 오얏 이 珥: 귀막이 옥 이 -
이당
(李唐)
:
‘당나라’를 달리 이르는 말. 당나라 군주의 성(姓)이 이(李)였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당나라: 618년에 중국의 이연(李淵)이 수나라 공제(恭帝)의 양위를 받아 세운 통일 왕조. 도읍은 장안(長安)이며,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문화가 크게 융성하였으나, 안사(安史)의 난 이후 쇠퇴하여 907년에 주전충(朱全忠)에게 망하였다.)
🌏 李: 오얏 이 唐: 당나라 당 -
저리
(楮李)
:
갈매나뭇과의 낙엽 활엽 관목. 높이는 2~5미터이며, 가지 끝이 가시로 변한다. 잎은 마주나고 톱니가 있으며, 5월에 연한 황록색의 잔꽃이 잎겨드랑이에 한두 송이씩 핀다. 열매는 약용하고 나무껍질은 염료로 쓴다. 골짜기나 개울가에서 자라는데 경북, 충남을 제외한 한국 각지와 우수리강,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 楮: 닥나무 저 李: 오얏 리 -
이조
(李朝)
:
‘이씨조선’을 줄여 이르는 말. (이씨 조선: 이씨가 세운 조선이라는 뜻으로, ‘조선’을 낮추어 이르는 말. (조선: 1392년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 한양에 도읍하였으며,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사회의 지도 이념으로 삼아 중앙 집권적인 양반 관료 체제를 이루었다. 15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내외적 혼란을 극복하고 18세기 이후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1897년에 대한 제국으로 국호를 개칭하였고, 19세기에 구미 열강과 일본의 압력을 받다가 1910년 일본에 국권을 강탈당하였다.))
🌏 李: 오얏 이 朝: 아침 조 -
이옹
(李邕)
:
중국 당나라의 서예가ㆍ문인(678~747). 자는 태화(泰和). 행서(行書)에 능하여 그가 쓴 비액(碑額)이 팔백이라고 전한다.
🌏 李: 오얏 이 邕: 화할 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