餘 🌏한자(사자성어) 💡역사 분야 28개
-
동부여
(東夫餘)
:
해부루가 북부여에서 나와 부여의 동쪽 두만강 유역에 세운 나라. 410년에 광개토 대왕에게 정복되어 멸망하였다.
🌏 東: 동녘 동 夫: 남편 부 餘: 남을 여 -
여결
(餘結)
:
조선 후기에, 탈세를 목적으로 토지 대장인 양안(量案)에 부분적으로 올리지 아니한 토지의 결수(結數).
🌏 餘: 남을 여 結: 맺을 결 -
부여
(夫餘/扶餘)
:
기원전 1세기 무렵에 부여족이 북만주 일대에 세운 나라. 농경 생활을 주로 했고, 중국으로부터 철기 문화를 받아들이고 은력을 사용하는 등 진보된 제도와 조직을 갖추었으나, 3세기 말에 선비족의 침입으로 크게 쇠퇴한 후, 그 영토가 대부분 고구려에 편입되었다.
🌏 夫: 남편 부 餘: 남을 여 扶: 도울 부 길 포 餘: 남을 여 -
부여국
(夫餘國)
:
기원전 1세기 무렵에 부여족이 북만주 일대에 세운 나라. 농경 생활을 주로 했고, 중국으로부터 철기 문화를 받아들이고 은력을 사용하는 등 진보된 제도와 조직을 갖추었으나, 3세기 말에 선비족의 침입으로 크게 쇠퇴한 후, 그 영토가 대부분 고구려에 편입되었다.
🌏 夫: 남편 부 餘: 남을 여 國: 나라 국 -
삼십구 여갑당
(三十九餘甲幢)
:
신라 때의 군대 조직. 경여갑당, 소경여갑당, 외여갑당 따위가 모두 39개 있었다.
🌏 三: 석 삼 十: 열 십 九: 아홉 구 餘: 남을 여 甲: 갑옷 갑 幢: 기 당 -
여갑당
(餘甲幢)
:
신라 때에 둔 군대. 경여갑당, 소경여갑당, 외여갑당 등 삼십구 여갑당(三十九餘甲幢)이 있었다.
🌏 餘: 남을 여 甲: 갑옷 갑 幢: 기 당 -
외여갑당주
(外餘甲幢主)
:
신라 때에 둔 외여갑당의 으뜸 벼슬. 위계(位階)는 급찬(級飡)에서 사지(舍知)까지이다.
🌏 外: 바깥 외 餘: 남을 여 甲: 갑옷 갑 幢: 기 당 主: 주인 주 -
여정색
(餘丁色)
:
조선 말기에, 병조(兵曹)에 속한 부서. 충순위(忠順衛), 충찬위(忠贊衛), 충장위(忠壯衛)의 순찰군(巡察軍)과 여정(餘丁)의 번포(番布)를 관리하였다.
🌏 餘: 남을 여 丁: 고무래 정 色: 빛 색 -
남부여
(南夫餘)
:
성왕(聖王) 16년(538)부터 멸망 때까지의 백제의 국호. 도읍을 웅진(熊津)에서 사비(泗沘)로 옮기고 백제를 중흥하고자 하는 의도로 부른 이름이다.
🌏 南: 남녘 남 夫: 남편 부 餘: 남을 여 -
부여 나성
(扶餘羅城)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의 동쪽에 있는 토성(土城). 백제 때, 사비성의 외곽을 이루었다.
🌏 扶: 도울 부 餘: 남을 여 羅: 그물 나 城: 재 성 -
북부여
(北夫餘)
:
동부여에 대하여 원래의 부여를 이르는 말.
🌏 北: 북녘 북 夫: 남편 부 餘: 남을 여 -
소경여갑당
(小京餘甲幢)
:
신라 때에 둔 삼십구 여갑당의 하나. 소경을 방어하는 일을 맡아 하던 군대이다.
🌏 小: 작을 소 京: 서울 경 餘: 남을 여 甲: 갑옷 갑 幢: 기 당 -
삼부여
(三夫餘)
:
고대 만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세 부여족. 북부여, 동부여, 남부여를 이른다.
🌏 三: 석 삼 夫: 남편 부 餘: 남을 여 -
소경여갑당주
(小京餘甲幢主)
:
신라 때에, 소경여갑당에 속한 무관 벼슬. 위계는 급찬에서 사지까지이다.
🌏 小: 작을 소 京: 서울 경 餘: 남을 여 甲: 갑옷 갑 幢: 기 당 主: 주인 주 -
경여갑당주
(京餘甲幢主)
:
신라 때에 둔 경여갑당의 으뜸 무관 벼슬. 품계는 사지(舍知)부터 급벌찬까지였다.
🌏 京: 서울 경 餘: 남을 여 甲: 갑옷 갑 幢: 기 당 主: 주인 주 -
여마
(餘馬)
:
조선 시대에, 사신(使臣)이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베이징까지 갈 때에 짐을 싣고 가는 말에 여벌로 딸려 보내던 빈 말.
🌏 餘: 남을 여 馬: 말 마 -
부여 규암리 금동 관음보살 입상
(扶餘窺岩里金銅觀音菩薩立像)
:
삼국 시대 말기의 보살상. 1970년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나온 것으로, 겹꽃잎으로 된 둥근 연화 대좌 위에 똑바로 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보살상에서 표현된 ‘X’ 자 모양으로 길게 늘어진 구슬 장식은 7세기에 들어와서 유행한 삼국 시대 보살상 표현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국보 제293호.
🌏 扶: 도울 부 餘: 남을 여 窺: 엿볼 규 岩: 바위 암 里: 마을 리 金: 쇠 금 銅: 구리 동 觀: 볼 관 音: 소리 음 菩: 보리 보 薩: 보살 살 立: 설 입 像: 모양 상 -
여정
(餘丁)
:
1
조선 시대에, 평민이나 천민이 출역(出役)할 경우 역사에 나가지 아니한 여정(餘丁)을 한두 사람 보내어 집안일을 도와주던 일.
2
조선 시대에, 보충대의 강서(講書) 시험에서 낙방한 사람.
🌏 餘: 남을 여 丁: 고무래 정 -
경여갑당
(京餘甲幢)
:
신라 때에 둔 삼십구 여갑당의 하나. 왕경(王京)을 방어하는 일을 맡아 하던 군대이다.
🌏 京: 서울 경 餘: 남을 여 甲: 갑옷 갑 幢: 기 당 -
부여족
(夫餘族)
: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약 1,000년 동안 북만주에서 부여국을 세워 활동한 예맥족의 종족. 철기를 사용하고 영고(迎鼓)라는 제천 의식을 행하였으며 순장과 일부다처제의 풍습이 있었다.
🌏 夫: 남편 부 餘: 남을 여 族: 겨레 족 -
졸본 부여
(卒本夫餘)
:
‘고구려’를 달리 이르는 말. 부여의 일족이 졸본에 도읍하여 세운 나라라는 뜻이다. (고구려: 우리나라 삼국 시대의 삼국 가운데 동명왕 주몽이 기원전 37년에 세운 나라. 광개토 대왕 때에는 한반도 남부에서 요동 지방까지 영유하였으며, 668년에 신라와 중국 당나라의 연합군에게 멸망하였다.)
🌏 卒: 마칠 졸 本: 근본 본 夫: 남편 부 餘: 남을 여 -
봉여
(封餘)
:
임금에게 물건을 바칠 때, 신하들이 나누어 가지던 나머지 물건.
🌏 封: 봉할 봉 餘: 남을 여 -
부여 청산성
(扶餘靑山城)
:
충청남도 부여군 부소산 동북쪽에 있는 성. 꼭대기에는 타원형의 토단(土段)을 둘러쌓았다. 사적 제59호.
🌏 扶: 도울 부 餘: 남을 여 靑: 푸를 청 山: 뫼 산 城: 재 성 -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
(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5층 석탑. 백제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창의적이고 정제된 기풍으로 후세 석탑의 모범이 되었다. 국보 제9호.
🌏 扶: 도울 부 餘: 남을 여 定: 정할 정 林: 수풀 림 寺: 절 사 址: 터 지 五: 다섯 오 層: 층 층 石: 돌 석 塔: 탑 탑 -
부여
(扶餘)
:
통일 신라 경덕왕 때 ‘남부여’를 고친 이름. (남부여: 성왕(聖王) 16년(538)부터 멸망 때까지의 백제의 국호. 도읍을 웅진(熊津)에서 사비(泗沘)로 옮기고 백제를 중흥하고자 하는 의도로 부른 이름이다.)
🌏 扶: 도울 부 餘: 남을 여 -
후부여
(後夫餘)
:
기원전 2세기 초에 지린성(吉林省)의 눙안(農安) 부근에 도읍하여 5세기 말까지 존속한 나라. 조직적인 국가 기구와 강한 군사력ㆍ발전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쪽으로는 연해주 지방, 서쪽으로는 서요하 중류와 넌장강(嫩江江) 상류를 연결하는 경계선, 북쪽으로는 아무르강 이남, 남쪽으로는 고구려와 잇닿은 넓은 지역을 차지하였다. 3세기 말 이후에 서쪽 선비족의 거듭되는 침략과 고구려의 강성한 세력에 의하여 급속히 약화되었고, 남은 세력은 5세기 말에 고구려에 투항하였다.
🌏 後: 뒤 후 夫: 남편 부 餘: 남을 여 -
외여갑당
(外餘甲幢)
:
신라 때에 둔 삼십구 여갑당의 하나. 왕경과 소경을 제외한 외방에 설치하였던 군대이다.
🌏 外: 바깥 외 餘: 남을 여 甲: 갑옷 갑 幢: 기 당 -
부여 오층탑
(扶餘五層塔)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5층 석탑. 백제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창의적이고 정제된 기풍으로 후세 석탑의 모범이 되었다. 국보 정식 명칭은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이다. 국보 제9호.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5층 석탑. 백제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창의적이고 정제된 기풍으로 후세 석탑의 모범이 되었다. 국보 제9호.)
🌏 扶: 도울 부 餘: 남을 여 五: 다섯 오 層: 층 층 塔: 탑 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