應 🌏한자(사자성어) 💡인명 분야 3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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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응
(金聖應)
:
조선 후기의 무신(1699~1764). 자는 군서(君瑞).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 후 무신 장붕익(張鵬翼)의 추천으로 사복시 내승으로 기용되었다. 어영대장, 병조 판서를 지냈다.
🌏 金: 성 김 聖: 성인 성 應: 응할 응 -
이한응
(李漢應)
:
구한말의 외교가(1874~1905). 자는 경천(敬天). 호는 국은(菊隱). 1901년에 영국, 벨기에 양국 주차 공사관(駐箚公使館) 3등 참사관(參事官)이 되었고, 1904년에 주영 공사관 서리 공사(署理公使)가 되었으나, 제일 차 한일 협약이 체결되어 한국 정부의 국제적 지위가 전락하자 이를 개탄하여 자결하였다.
🌏 李: 오얏 이 漢: 한나라 한 應: 응할 응 -
오응정
(吳應鼎)
:
조선 선조 때의 문신(1548~1597). 자는 문중(文仲). 호는 완월당(翫月堂)ㆍ응정(應井).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많은 활약을 하였으며, 남원(南原)에서 전사하였다.
🌏 吳: 나라 이름 오 應: 응할 응 鼎: 솥 정 -
손응성
(孫應星)
:
서양화가(1916~1979). 세필(細筆)의 사실주의 화가로, 석류ㆍ고건축 풍경 따위를 즐겨 그렸다.
🌏 孫: 손자 손 應: 응할 응 星: 별 성 -
김응남
(金應南)
:
조선 중기의 문신(1546~1598). 자는 중숙(重叔). 호는 두암(斗巖). 우의정ㆍ좌의정을 지냈으며, 이율곡과 함께 당쟁을 막는 데 힘썼다.
🌏 金: 성 김 應: 응할 응 南: 남녘 남 -
한응인
(韓應寅)
:
조선 중기의 문신(1554~1614).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졸재(百拙齋)ㆍ유촌(柳村). 임진왜란 때 팔도 순찰사가 되어 공을 세워 호조 판서로 임명되었다. 뒤에 선조가 위독할 때 유교칠신의 한 사람으로 영창 대군의 보호를 부탁받았다가 광해군 때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 韓: 나라 한 應: 응할 응 寅: 동방 인 -
위응물
(韋應物)
:
중국 당나라의 시인(737~804?). 도연명과 함께 도위(陶韋)라고 불릴 만큼 쌍벽을 이루었다. 시집에 ≪위소주집(韋蘇州集)≫ 10권이 있다.
🌏 韋: 가죽 위 應: 응할 응 物: 만물 물 -
김응조
(金應祖)
:
조선 중기의 문신(1587~1667). 자는 효징(孝徵). 호는 학사(鶴沙)ㆍ아헌(啞軒). 공조 참의, 한성부 우윤을 지냈으며 문장에 능하였다. 저서에 ≪학사집≫, ≪사례문답(四禮問答)≫ 따위가 있다.
🌏 金: 성 김 應: 응할 응 祖: 할아비 조 -
이하응
(李昰應)
:
‘흥선대원군’의 이름. (흥선 대원군: 조선 고종 때의 정치가(1820~1898). 이름은 이하응(李昰應). 호는 석파(石坡). 고종의 아버지로, 아들이 12세에 왕위에 오르자 섭정하여, 서원을 철폐하고 외척인 안동 김씨의 세력을 눌러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는 따위의 내정 개혁을 단행하였다. 한편으로는 경복궁의 중건, 천주교에 대한 탄압, 통상 수교의 거부 정책을 고수하여 사회ㆍ경제적인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 李: 오얏 이 昰: 여름 하 應: 응할 응 -
권응수
(權應銖)
:
조선 선조 때의 의병장(1546~1608). 자는 중평(仲平). 호는 백운재(白雲齋).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 權: 권세 권 應: 응할 응 銖: 무게 단위 수 -
방응모
(方應謨)
:
언론인(1890~?). 호는 계초(啓礎). 광산업으로 재산을 모아 1932년에 재정난에 빠진 ≪조선일보≫를 인수하여 사장이 되었으며, 8ㆍ15 광복 후에 ≪조선일보≫를 복간(復刊)하여 운영하던 중, 6ㆍ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 方: 모 방 應: 응할 응 謨: 꾀할 모 -
이응로
(李應魯)
:
동양화가(1904~1989). 호는 죽사(竹史)ㆍ고암(顧菴). 1958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 동양 미술 학교를 세우고, 1967년에는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작품에 <소>, <콤포지션>, <무(舞)> 따위가 있다.
🌏 李: 오얏 이 應: 응할 응 魯: 노둔할 로 -
응윤
(應允)
:
조선 정조ㆍ순조 때의 승려(1743~1804). 호는 경암(鏡巖). 속성은 민씨(閔氏). 한퇴지(韓退之)의 배불론을 배격하고 시문(詩文)으로 선도(禪道)를 드날렸다.
🌏 應: 응할 응 允: 진실로 윤 -
한치응
(韓致應)
:
조선 후기의 문신(1760~1824). 자는 혜보(徯甫). 호는 병산(甹山). 순조 때 채제공의 신원(伸冤)을 청하는 상소 사건에 연루되어 쫓겨났다가 뒤에 다시 등용되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이유수(李儒修), 정약전 등과 교유하며 죽란 시사(竹欄詩社)라는 모임을 조직하였다. 저서에 ≪병산집≫이 있다.
🌏 韓: 나라 한 致: 이를 치 應: 응할 응 -
김응하
(金應河)
:
조선 중기의 무신(1580~1619). 자는 경의(景義). 삼수 군수ㆍ북우후(北虞侯) 등을 지냈으며, 광해군 11년(1619)에 명나라의 원병 요청으로 만주의 건주위(建州衛)를 치러 출정하였다가 전사하였다.
🌏 金: 성 김 應: 응할 응 河: 강물 하 -
금응협
(琴應夾)
:
조선 중기의 문신ㆍ학자(1526~1596). 자는 협지(夾之). 호는 일휴당(日休堂). 문집에 ≪일휴집(日休集)≫이 있다.
🌏 琴: 거문고 금 應: 응할 응 夾: 낄 협 -
왕응린
(王應麟)
:
중국 남송의 학자(1223~1296). 자는 백후(伯厚). 호는 심녕거사(深寧居士). 박식하고 합리적인 그의 고증적 학풍은 후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저서에 ≪곤학기문≫, ≪옥해(玉海)≫, ≪통감지리통석(通鑑地理通釋)≫이 있다.
🌏 王: 임금 왕 應: 응할 응 麟: 기린 린 -
김응환
(金應煥)
:
조선 후기의 화가(1742~1789). 자는 영수(永受). 호는 복헌(復軒)ㆍ담졸당(擔拙堂). 도화서 화원으로 정조의 명을 받아 금강산 경치를 그렸다. 작품에 <강안청적도(江岸聽笛圖)>가 있다.
🌏 金: 성 김 應: 응할 응 煥: 불꽃 환 -
권응창
(權應昌)
:
조선 시대의 문신(1505~1568). 자는 경우(景遇). 호는 지족당(知足堂). 경상도ㆍ전라도 관찰사를 지냈고,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맹산(孟山)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 權: 권세 권 應: 응할 응 昌: 창성할 창 -
양응춘
(楊應春)
:
조선 선조 때의 의병장(?~1592). 자는 인경(仁卿). 호는 도곡(道谷). 온양 현감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을 따라 청주성 탈환 작전에 참여하고 금산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 楊: 버들 양 應: 응할 응 春: 봄 춘 - 마루야마 오쿄 (Maruyama Ookyo[圓山應擧]) : 일본의 화가(1733~1795). 에도(江戶) 시대 중기의 화가로, 중국 명나라ㆍ청나라의 사생화와 서양의 원근법을 도입하여 일본화에서 새로운 사실 형식으로 마루야마파를 창시하여 많은 문하생을 길러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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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응식
(閔應植)
:
조선 고종 때의 척신(戚臣)(1844~?). 자는 성문(性文). 호는 우당(藕堂). 임오군란 때 충주의 자택을 명성 황후의 피신처로 제공하여 혜상공국 총판(惠商公局總辦)이 되었다. 개화파 타도에 힘썼으며, 갑오개혁으로 고금도(古今島)로 유배되었다.
🌏 閔: 위문할 민 應: 응할 응 植: 심을 식 -
양응정
(楊應鼎)
:
조선 명종 때의 문인(1519~1581). 자는 공섭(公燮). 호는 송천(松川). 공조 참판을 거쳐 대사성을 지냈고, 시문에 능하여 이름이 높았다. 저서에 ≪송천집≫이 있다.
🌏 楊: 버들 양 應: 응할 응 鼎: 솥 정 -
김응기
(金應箕)
:
조선 중종 때의 문신(1457~1519). 자는 미수(眉叟). 호는 병암(屛菴). 좌의정ㆍ영중추부사 등을 지냈으며, 성리학자로서 천문ㆍ지리ㆍ산수(算數)에도 정통하였다.
🌏 金: 성 김 應: 응할 응 箕: 키 기 -
응창
(應瑒)
:
중국 후한 말기의 문인(?~?). 건안 칠자(建安七者)의 한 사람이다.
🌏 應: 응할 응 瑒: 옥잔 창 -
노응규
(盧應奎)
:
조선 시대의 의병장(1861~1907). 자는 성오(聖五)ㆍ경오(景五). 호는 신암(愼菴). 최익현의 문인(門人)으로, 고종 32년(1895) 고향 진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해에서 양곡의 일본 반출을 막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 盧: 밥그릇 노 應: 응할 응 奎: 별 이름 규 -
김응원
(金應元)
:
구한말의 서화가(1855~1921). 호는 소호(小湖). 난초를 잘 그렸으며, 예서ㆍ행서에 뛰어났다. 작품에 <묵란도(墨蘭圖)>, <지란정상도(芝蘭呈祥圖)> 따위가 있다.
🌏 金: 성 김 應: 응할 응 元: 으뜸 원 -
강응철
(康應哲)
:
조선 시대의 의병장ㆍ학자(1562∼1635). 자는 명보(明甫). 호는 남계(南溪). 임진왜란 당시 향병(鄕兵)을 모집하여 상주(尙州) 등을 지켰고, 광해군의 난정(亂政)에 분개하여 벼슬을 그만둔 후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저서에 ≪남계유고(南溪遺稿)≫가 있다.
🌏 康: 편안할 강 應: 응할 응 哲: 밝을 철 -
이최응
(李最應)
:
구한말의 문신(1815~1882). 자는 양백(良伯). 호는 산향(山響).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형으로 통상 수교의 거부를 반대하여 대원군과 반목이 심하였다. 좌의정, 영의정을 거쳐 총리대신이 되었으나, 임오군란 때 살해되었다.
🌏 李: 오얏 이 最: 가장 최 應: 응할 응 -
권응인
(權應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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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문인(?~?). 자는 사원(士元). 호는 송계(松溪). 만당(晩唐)의 시풍을 받아들여 당시 송나라의 시풍이 유행하던 문단에 큰 전환을 가져왔으며, 시평(詩評)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저서에 ≪송계집≫이 있다.
🌏 權: 권세 권 應: 응할 응 仁: 어질 인 -
도응유
(都應兪)
:
조선 중기의 학자ㆍ의병장(?~?). 자는 해보(諧甫). 호는 취애(翠崖).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의병장으로,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는 소모장으로 활동하였다. 저서에 ≪오현예설(五賢禮說)≫이 있다.
🌏 都: 도읍 도 應: 응할 응 兪: 그러할 유 -
정도응
(鄭道應)
:
조선 중기의 학자(1618~1667). 자는 봉휘(鳳輝). 호는 무첨(無忝). 대군사부, 자의(諮議)를 지냈으며, 저서에 ≪소대명신행적(昭代名臣行蹟)≫, ≪소대수어(昭代粹語)≫가 있다.
🌏 鄭: 나라 이름 정 道: 길 도 應: 응할 응 -
응준
(應俊)
:
조선 후기의 승려(1587~1672). 호는 회은(晦隱/悔隱). 속성은 기(奇). 16세 때 출가하여 승려가 된 뒤 여러 종장(宗匠)을 찾아가서 각성(覺性)의 법을 계승하였다. 병자호란 때 승병을 이끌고 싸운 뒤 여러 벼슬에 올랐다.
🌏 應: 응할 응 俊: 준걸 준 -
유응부
(兪應孚)
:
조선 초기의 장군(?~1456). 자는 신지(信之). 호는 벽량(碧梁).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으로, 세조 2년(1456)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처형되었다. 유학(儒學)에 조예가 깊었으며, 숙종 때 병조 판서에 추증되었다. 시조 3수가 전한다.
🌏 兪: 그러할 유 應: 응할 응 孚: 미쁠 부 -
정응문
(鄭應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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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인종 때의 문신(?~?). 남해안 일대의 도적들을 진압하고, 귀원장(歸原場)ㆍ취안장(就安場)ㆍ화순장(和順場)을 설치하여 이들을 살게 하였다.
🌏 鄭: 나라 이름 정 應: 응할 응 文: 글월 문 꾸밀 문 -
고응척
(高應陟)
:
조선 중기의 학자ㆍ시인(1531~1605). 자는 숙명(叔明). 호는 두곡(杜谷)ㆍ취병(翠屛). 풍기 군수, 경주 부윤 따위를 지냈다. 저서에 ≪두곡집(杜谷集)≫ 따위가 있다.
🌏 高: 높을 고 應: 응할 응 陟: 오를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