巖 🌏한자(사자성어) 💡인명 분야 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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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
(白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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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의 호. (박은식: 독립운동가(1859~1925). 자는 성칠(聖七). 호는 백암(白巖)ㆍ겸곡(謙谷). 상하이(上海)에서 ≪독립신문≫, ≪한족 회보≫, ≪사민보(四民報)≫ 등의 주필로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저서에 ≪한국 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따위가 있다.)
🌏 白: 흰 백 巖: 바위 암 -
호암
(湖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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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평’의 호. (문일평: 사학자ㆍ언론인(1888~1936). 호는 호암(湖巖). 일본에서 공부하고 중국의 신문사에서 근무하였으며 조선일보사의 편집 고문으로 일하였다. 국사를 전공하여 많은 사론(史論)과 작품을 남겼다. 저서에 ≪호암전집≫ 따위가 있다.)
🌏 湖: 호수 호 巖: 바위 암 -
김암
(金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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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의 문신ㆍ학자(?~?). 당나라에 유학하면서 음양학을 연구하여 ≪둔갑법≫을 저술하였고 귀국하여 사천대박사(司天大博士)가 되었으며, 점복술(占卜術)과 은형술(隱形術)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 金: 성 김 巖: 바위 암 -
번암
(樊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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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제공’의 호. (채제공: 조선 영조ㆍ정조 때의 문신(1720~1799).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ㆍ번옹(樊翁). 영의정을 지냈다. 1781년 서명응(徐命膺)과 함께 ≪국조보감≫을 편찬하였으며, 가톨릭교에 대하여 온건 정책을 폈다. 저서에 ≪번암집≫ 59권이 있다.)
🌏 樊: 울 번 巖: 바위 암 -
연암
(燕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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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호. (박지원: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ㆍ실학자(1737~1805). 자는 중미(仲美)ㆍ미중(美仲). 호는 연암(燕巖)ㆍ연상(煙湘). 정조 4년(1780)에 진하사(進賀使) 박명원(朴明源)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열하일기≫를 저술하여 유려한 문장과 진보적 사상으로 이름을 떨쳤다. 북학론을 주장하였고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을 강조하였다. 문집에 ≪연암집≫이 있다.)
🌏 燕: 제비 연 巖: 바위 암 -
조봉암
(曺奉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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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1898~1959). 호는 죽산(竹山). 1919년 3ㆍ1 운동에 참가하여 복역하였고, 1925년 조선 공산당에 참여하였으나 광복 후 공산당을 탈당하였다. 1952년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여 낙선하였으며, 1956년 진보당을 창당하고 정치 활동을 벌이다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사형되었다.
🌏 曺: 성 조 奉: 받들 봉 巖: 바위 암 -
농암
(聾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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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보’의 호. (이현보: 조선 중종 때의 문신(1467~1555). 자는 비중(棐仲). 호는 농암(聾巖)ㆍ설빈옹(雪鬢翁). 벼슬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만년에 고향으로 은퇴하여 시가를 읊조리며 생활하였다. 작품에 <어부사(漁夫詞)>, <춘면곡(春眠曲)>, <효빈가(效嚬歌)>, 저서에 ≪농암집≫ 따위가 있다.)
🌏 聾: 귀머거리 농 巖: 바위 암 -
홍암
(弘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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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의 호. (나철: 대종교의 창시자(1863~1916). 본명은 인영(寅永). 호는 홍암(弘巖).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나라를 판 대신들을 죽이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융희 3년(1909)에 대종교의 교리를 포교하였고, 저서에 ≪삼일신고≫ 따위가 있다.)
🌏 弘: 넓을 홍 巖: 바위 암 -
농암
(農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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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협’의 호. (김창협: 조선 중기의 학자ㆍ문신(1651~1708).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ㆍ삼주(三洲). 숙종 8년(1682)에 문과에 급제하고 집의(執義)ㆍ대사성을 지냈으나, 아버지 김수항이 기사환국 때 사사(賜死)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며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당대의 문장가이며 서예에도 능하였다. 저서에 ≪농암집≫, ≪사단칠정변(四端七情辨)≫ 따위가 있다.)
🌏 農: 농사 농 巖: 바위 암 -
이암
(李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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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화가(1507~1566). 자는 정중(靜仲). 왕족으로 두성령(杜城令)에 봉군되었다. 잡화(雜畫)를 잘하여 화조, 초충(草蟲), 개, 고양이 따위를 잘 그렸다. 작품에 <화조묘구도>, <당견도(唐犬圖)> 따위가 있다.
🌏 李: 오얏 이 巖: 바위 암